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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조성웅 시집, <중심은 비어 있었다>

by 푸른사상 2020. 7. 14.

분류--문학(시)

 

중심은 비어 있었다

 

조성웅 지음푸른사상 시선 127128×205×10 mm1609,000

ISBN 979-11-308-1685-2 03810 | 2020.7.15

 

 

■ 도서 소개

 

노동자의 사랑과 연대의 노래

 

조성웅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중심은 비어 있었다<푸른사상 시선 127>로 출간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에 있으면서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향한 혁명을 꿈꿔온 시인은 이 시집에서 노동자들의 실정을 생생하게 기록하면서 그 극복을 위한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한편 어머니의 투병과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함께한 시인의 시간은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 시인 소개

 

조성웅(趙誠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시집 절망하기에도 지친 시간 속에 길이 있다』 『물으면서 전진한다』 『식물성 투쟁의지가 있다.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모임 해방글터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siwanore@hanmail.net)

 

 

■ 목차

 

시인의 말

 

1부 위험에 익숙해져갔다

대설 / 햇살 한 뼘 담요 / 가난을 배반하지 않았다 / 젖은 몸 / 위험에 익숙해져갔다 / 바닥을 견디는 힘 / 둥근 씨앗 / 한기 같은 독한 마음이 들어찬다 / 눈물도 단단해져가는 것이다 / 자발적 복종 / 새벽 여명은 / 체온 같은 대화 / 공감은 체온을 따라 흐른다

 

2부 석진 씨가 통증 깊게 말했다

석진 씨가 통증 깊게 말했다 / 지금 여성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 고공 농성자들이 고공 농성자들에게 / 더 이상 국가는 필요 없다 / 전망은 단절 없이 오지 않는다 / 존엄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다 / 생을 다해 사람을 꿈꾸었다 / 코뮤니스트의 운명 / 백만 촛불 마이너 / 바람은 중심을 갖지 않는다

 

3부 중심은 비어 있었다

작고 하얀 발 / 엄마 소원은 방 안에 있는 정지에서 살림을 해보는 거였다 / 옹그린 울 엄마, 활짝 펴져라 / 주름 / 불한당 조 씨 / 가부장은 타도되어야 한다 / 엄마는 새로운 세계의 첫날처럼 웃었다 / 참 불가사의한 힘 / 소양, 해 지는 들녘을 걷다 / 엄마 웃음소리는 장대비에도 젖지 않았다 / 내 인생 최고 문화재 / 모든 꽃들은 그녀에게 이르러 긍정적이었다 / 강원도의 달 / 외할머니 눈물 속엔 참 많은 언어가 살고 있다 / 중심은 비어 있었다 / 내 시의 뿌리 / 사랑은 온도로 전달하는 거다 / 돌봄의 시간 / 엄마는 내 시집을 소리 내어 읽었다 / 엄마는 존중받고 있었다 / 내가 행복한 사람이야 / 변방의 아들이 야생의 엄마를 만나다 / 마음이 발효되는 시간 / 건기의 엄마 / 방 안 가득 코를 찌르는 똥냄새가 그렇게 고마웠다 / 치유의 집 / / 잣나무 숲이 자꾸 생각났다 / 뭇별 / 김장 / 땅과 사귀다

 

작품 해설수평의 대지를 향한 곁의 정치이성혁

 

 

■ 시인의 말

 

내 세 번째 시집을 소리 내어 읽은 엄마는

웅아, 내 얘기는 없네라고 말씀하셨다.

엄마 삶을 기록한 시집을 선물하고 싶었다.

 

내 삶이 변할 수 있었던 건

아픈 엄마 곁에서 배운 긍정의 힘 때문이었다.

곁을 내어주고 깃들게 했다.

품고 돌보고 가꾸는 공동체적 삶이었다.

 

노동조합이, 단결이, 투쟁이, 민주주의가, 혁명이

실제 삶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고

자본주의 지배질서의 일부가 되었을 때

난 아픈 엄마 곁에 있었다.

자본주의의 참화를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젖은 몸 곁에 있었다.

 

몸을 낮춰야 보이는 것들

귀를 열어야 통각되는 것들

위로가 시가 됐다.

치유가 시가 됐다.

 

맨몸에 새겨지는 삶의 온도가

그대에게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계절을 갖지 않는 날이었다.

 

 

■ 작품 세계

  

아마 조성웅 시인만큼 투쟁 현장이나 노동 현장에서 주로 시를 길어 올리는 시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직접적으로 표명한다.) 그에게는 그러한 현장이 시적인 것이 묻혀 있는 보고(寶庫)인 것이다. 그의 시집에는 숱한 노동운동 열사들이 호명된다. 그 열사들이 잊히면 안 된다는 듯이. 그에겐 그 열사들의 삶이야말로 시적이다.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과 다중이 등장하고 이들의 말이 인용되고 행동이 묘사된다. 그럼으로써 한국 프롤레타리아(다중)의 자기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주고 가시화한다. 이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목소리 역시 그에게는 시다. 온갖 스펙터클과 제도에 의해 왜곡되고 훼손된, 그리고 탈취되어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이미지는 조성웅의 시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그의 시에서 그들은 조정당하고 대의되어야 할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성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존엄하게 드러내고 있다.(중략)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노동 현장에서 도리어 삶의 비전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저 고공 현장에서의 노동은 소외되고 위험한 것이지만, 그러한 노동으로부터도 자본에 포섭되지 않는 노동자의 창의력과 생명의 힘이 발휘되어 반짝인다. 노동자를 도구화하는 어떠한 극한의 노동 환경에서도 노동자의 삶과 능력은 자본에 완전히 장악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험한 노동 속에서도 살아있는 노동의 창의력과 비전을 발견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존엄성을 인식한다는 것이요, 그 발견 현장은 시적인 것이 번뜩이는 삶의 현장, 시의 현장이 된다. 바로 삶을 포획하는 갖가지 틀로부터 넘쳐나는 생명의 힘이야말로 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포획으로부터 탈출한 노동의 기예는 시를 형성하고 시는 노동의 비전(전망)을 제시한다. 포획장치로부터 둘러싸여 감추어진 그 시적인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이 조성웅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다. 이 시대의 노동 현장으로부터 시를 길어내는 조성웅의 시는, 악몽의 성과 같은 이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 저 노동자처럼 허공에 수평의 대지를 만들어내는 시의 고공농성이라고 하겠다.

이성혁(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조성웅, 그는 누구인가.

용접 불꽃이 타오르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시와 혁명을 꿈꾸던 노동자-시인이 조성웅이다. 실업의 공포를 견디다 못해 제 발로 자본의 명령이 지배하는 제국의 영역으로 찾아 들어간, 그러나 그곳에서의 시간이 자발적 복종의 시간에 불과함을 투시한 당찬 생활인이 조성웅이다. 그러나 그는 작업을 마치고 함께 퇴근길을 걸어 나올 때면 지친 동료의 등에 손을 얹어주는 따스한 마음의 시민이었다. 요컨대 그는 사유하는 노동자, 혁명을 지향하는 시인이었다. 그런 조성웅에게 전환의 계기가 왔다. 하나는 노동의 현장 그 자체로부터 발생했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위암 발병으로부터 닥쳤다. 그는 준열히 규탄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투쟁하는 조합원을 제명하고/투쟁의 이름으로 계급을 배반하고/혁명의 이름으로 부르주아 선거 일정에 목매다는”(전망은 단절 없이 오지 않는다) 노동 조직의 내부 현실을. 현장을 떠나 엄마 옆에서 간병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도 그가 노동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노동과 생명의 연결을 발견하고 시의 새로운 차원을 획득한다. “밥이 곧 하늘이었다/비교할 수 없는 생의 깊이였다/뭇 생명들을 먹여 키우는 일/살아 활동하는 가장 급진적인 민주주의였다.”(참 불가사의한 힘) 조성웅의 살아 활동하는 민주주의가 열어갈 한국시의 미래를 주시하고자 한다.

염무웅(문학평론가)

 

 

■ 시집 속으로

 

위험에 익숙해져갔다

 

끝내

그는 한 뼘 남짓한 H빔 위에 모로 누워버렸다

그의 등 뒤에는 10미터 허공이 펼쳐졌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자세가 그래도 용접을 하기엔 최선의 자세

그는 허공조차 안전 지지대로 사용하는 법을 안다

 

저녁 밥상 앞에 앉기까지

위험에 익숙해져갔지만

그는 삶의 안전을 위한 최고의 역능을 숙련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난 한 뼘 남짓한 H빔 위에 모로 누운 그의 모습이

목숨을 살리는 방법 같고 공동체를 위한 끈질긴 질문 같고

이판사판 한번 붙어보자는 고공농성 같았다

 

허공은 모로 누운 그의 모습을 닮아 수평을 이루었다

 

 

둥근 씨앗

 

폭염이 점령한 오전 휴게시간

용접하는 노동자도

전기하는 노동자도

배관하는 노동자도

지금

막 샤워하고 나온 사람들 같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이곳저곳 멍들고 지쳤어도

통증 깊이 젖은 몸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가 가장 투명하다

 

상처 깊고 상한 마음 흘러 그대 체온에 가닿은 것이다

다 견뎌낸 시간이 다른 세계의 둥근 씨앗으로 맺혀 있다

 

젖은 담배를 건네며 웃는 그의 모습이 강해 보인다

내 젖은 몸에도

그의 웃음이 번져 삶이 아물고 있다

싹이 돋고 있다

 

 

중심은 비어 있었다

 

엄마는 말기 암이 있는 듯 없는 듯 함께 살았다

그냥 품고 돌보고 가꾸는 동행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고 아픈 데 없이 하루를 살았다

어떻게 죽음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엄마의 긍정적인 힘은 뭐라 설명하기가 참 힘들었다

 

엄마 곁을 떠나기 전 심은 배추와 총각무는

땡볕을 잘 견디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엄마를 닮았다

 

난 가을 태풍을 견뎌야 하는

배추와 총각무의 미래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내린 뿌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중심을 낳고 있었다

 

모두가 중심이었으므로 중심은 비어 있었다

둘이 아니지만 서로 독립적이었다

그냥 품고 돌보고 가꾸는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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