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연두는 모른다
조규남 지음|푸른사상 시선 123|128×205×9 mm|136쪽|9,000원
ISBN 979-11-308-1671-5 03810 | 2020.5.22
■ 도서 소개
이 세계를 떠받치는 생명력 가득한 시
조규남 시인의 첫 시집 『연두는 모른다』가 <푸른사상 시선 123>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일상의 제재들을 다채로운 비유로 노래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고 있다. 인간의 존재 가치가 상실된 이 시대에 시인은 생명력이 가득한 감수성과 이미지로 이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 시인 소개
조규남(曺圭南)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약속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일상을 빡빡이 나누어 쓰다 보니 짧은 문학 장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201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6회 구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았다. 소설집 『핑거로즈』가 있다. (E-mail: queencho815@naver.com)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우리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사춘기 / 푄 현상 1 / 목새 / 바람의 각도 / 구름 사촌 / 달리아 / 새벽의 발골 / 경적 / 연두는 모른다 / 강철 지네 / 푸른 말 / 푄 현상 2 / 백일홍의 자리 / 러닝머신 위에서
제2부 어떤 꽃은 예쁘고 어떤 꽃은 곱다
장미의 과녁 / 뭉크의 거울 / 여자의 에덴 / 광명시장 / 여왕을 위하여 / 물팔매로 강을 건넌다 / 곱다 / 꽃의 이명(耳鳴) / 쑥쑥 / 삼각형의 오심 / 냉동 찐빵을 데워 먹는 동안 / 담쟁이의 표정 / 초록의 내면 / 백면서생
제3부 간극과 간극으로 이어지는 층층
칡꽃 / 오나시스 / 숲이 풀려 나온다 / 김밥천국 / 저녁밥 / 비대칭 / 골목을 들어 올리는 것들 / 글썽이는 날개 / 고래를 고(顧)하다 / 하씨 고가(古家) 감나무 / 층층나무 / 아흔 번째 오월 / 액막이 북어 / 벽
제4부 깊은 소란이 환하다
그해 여름 돌멩이를 순장시켰다 / 세종기지 태극기는 누가 흔드나 / 거기 누구 없소 / 퀵 /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 기계 종족 / 안식처에 관하여 / 맥놀이 / 옴마댁 / 바람난 발자국 / 물의 경련 / 난생설화
■ 작품 해설:중심 없는 세계에서 그리는 길 찾기 - 진순애
■ 시인의 말
시(詩)의 행간을 붙잡고 최선을 다해 방황하는 밤, 주체할 수 없는 망설임의 내륙이 뜨거워 서둘러 목련꽃 성대를 식목한다. 봄꽃을 넘어온 습한 인연들에게 화상이라도 입으면 언어의 성전에 닿을까 싶어서
■ 작품 세계
현존하는 시간에서 벗어나 전설로 신화로 민담으로 전승되는 부재하는 것의 현존을 만나는 일은 오래된 미래, 혹은 낯선 미래를 찾아가야만 하는 역설의 비애이다. 그리움으로 그리는 역설의
비애는 중심 없는 세계를 허약하게 공격한다. 비록 그 공격력이 허약할지라도 멈출 수 없는 그리고 멈춰서는 안 되는 시의, 인간의, 존재의 근원적인 길 찾기라는 데 조규남 시가 지닌 특장이 있다.
신이 죽고 인간도 부재하고 그 자리를 로봇인간이 대신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그리고 삶의 중심에 있다. ‘인간의 시대가 거하고 로봇의 시대에 시의 자리는, 그리고 예술가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자문하도록 하는 조규남 시의 환기력이다. ‘역사가 된 상징의 세계가 역사 속으로 영원히 묻힐 것인지 아닌지 그것을 좌우하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또한 자문하게 한다. ‘상실한 길을 복구하기 위해 찾아가는 그리움이 허약한 공격으로만 남을 뿐인가’에 대한 조규남 시의 환기력인 것이다.
따라서 중심 없는 세계에서 부재중인 것을 그리워하며 찾아가기란 탈시대적이다. 그리움에 내재된 상징성조차 존재 의의를 상실하였으므로 그 탈시대성은 더욱더 확장된다. 그러나 그것은 중심 없는 세계에서 길 찾기를 대신하는 일로서의 존재 의의적 지평과는 반비례적 관계에 있다. 상실한 길, 없는 길을 찾아나서는 일이 중심 없는 세계에서 시인에게 주어진 책무라는 데 시인의 비애도 확장된다.
― 진순애(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사진은 세계를 향해 열린 창(窓)”이란 말이 있다. 한 장의 ‘결정적 순간’이 세계가 미처 알지 못하던 세계를 세계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아니, 시는 사진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세계의 창이었다. 조규남 시의 여러 창 가운데 가장 큰 창은 생명과 연관된 이미지다. 색깔로는 푸른색이고 운동으로는 솟구침이며 시공간적으로는 고생대와 지구 전체까지 아우른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은 근원에 대한 상상력과 만나 시의 스케일을 부풀리고 ‘땅의 기억’은 도시적 삶에 녹아들어 시의 현재성을 돌올하게 한다. 눈부심 속에서 어둠을 찾아내는 시인의 시력이 나날이 밝아져 ‘눈길이 오가는’ 창이 ‘사람이 드나드는’ 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 이문재(시인)
■ 시집 속으로
구름 사촌
내 발도 하늘을 문질러본 기억이 있다
나무 이파리처럼 시원하게 흔들리며
하늘에 발자국을 찍어본 일이 있다
바람이 건들대며 쓰다듬고 지나가면
구름도 덩달아 내 발 슬쩍 신어보고
도망가던 자국이 자꾸 간지럽다
운동장 놀이기구에 몸을 기대고 물구나무섰을 때
아무리 참으려 해도
거꾸로 몰린 피의 무게
감당하지 못하고 쿵
내려왔던 하늘이 되돌아가 버리자
또다시 온몸 받히며 살아가는 내 발
지금도 이파리가 되었던 짧은 시간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누워 뒹굴면서도 무심히 하늘을 더듬어보고
걸어 다닐 때도 바람을 느끼고 싶어 발꿈치 들썩인다
대낮에도 통로가 보이지 않아 눈물을 찔끔 훔치는 일도
최초의 천둥인 듯 크릉크릉 부르짖는 버릇도
내 속에 흐르는 구름의 피가 농간을 부리기 때문
발이 간지러운 가로수가 몸을 비튼다
아무리 걸어도 굳은살 한 점 박이지 않은
부드러운 초록 발
수많은 발바닥 활짝 펴 하늘을 닦는다
죽어서도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싶은 발
연두는 모른다
보도블록에 힘줄이 솟는다 밑동을 싸맨 플라타너스 봄기운 어쩌지 못해 쩍, 시멘트 자궁을 열고 타박한 새순 밀어낸다
익숙한 의자에 걸터앉듯 차가운 블록에 몸을 기댄 연두
마침표도 모르고 이음표도 모른다 가식이나 위선은 더더욱 모른다
국경을 넘어온 새의 노랫소리 머리 위를 맴돌 때 취객이 토해놓은 속 뒤집어쓰고
몸부림친 자리
노루 꼬리 해가 키를 늘려도 연두는 모른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군식구라는 것을
그래서 꼼지락꼼지락 주먹을 펴고 발걸음 내딛는다
노점상 리어카가 바람막이다
허리 부러져 나동그라지지 않도록, 행인들 발길에 차이지 않도록, 추위 가시지 않은 여린 잎에 봄볕 낭자하도록
경계주의보 긋는다
날마다 쑥쑥
실직한 쌍둥이 아빠 리어카 밑에서는 미혼모 여동생의 딸
연두가 해맑게 자라고 있다
꽃의 이명(耳鳴)
장광설이 아등바등
서로가 부딪치는 아니,
일방적으로 당하는 귀가
수십 년 담은 소리 부패해 세상 소란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소리로 소리를 막아버리던
정신마저 흐려진 할머니
어두운 귓속에 갇힌 포로들이
세상 바람 그리워 발버둥치듯
꽃 벙그러지는 소리 들린다고
퍼내지 못한 말에 싹튼 가지를 치켜든다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냉가슴
드르륵드르륵 뜨거움을 굴린다
밤낮을 가리지 않은 암괭이처럼
쭈그리고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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