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격렬한 대화
강태승 지음|푸른사상 시선 121|128×205×10 mm|162쪽|9,000원
ISBN 979-11-308-1598-5 03810 | 2020.3.20
■ 도서 소개
격렬하고도 역설적인 존재들의 노래
강태승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격렬한 대화』가 <푸른사상 시선 121>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 세계의 대상들을 모순되게 묘사하면서 본질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존재들의 격렬한 투쟁을 격렬한 대화라는 역설로써 간파하고 있는 것이 그 모습이다. 시인의 역설은 도망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함몰되지 않고 온몸으로 찾아낸 것이기에 구체적이면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 시인 소개
강태승(姜泰昇)
1961년 충북 진천 백곡에서 태어났다. 2014년 『문예바다』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만중문학상, 포항 소재 문학상,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백교문학상, 한국해양재단 해양문학상, 추보문학상, 해동공자 최충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칼의 노래』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문예바다와 시마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woosan6054@hanmail.net)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뱀의 대화법 / 격렬한 대화 / 선과 악의 결투? / 수면계좌 / 허물벗기 / 눈물 또는 상처 / 물방울의 발설 / 대화의 기원 / 그루터기 / 허기의 꽃 / 그녀의 입술에는 뱀이 산다 / 버섯의 독서법 / 죽음 굽기 / 대관령에 사는 뱀 / 입속의 입 입속의 혀 / 무덤은 살아 있다
제2부
낙화 / 복사꽃의 족보 읽기 / 밑줄 치기 / 허기의 부활 / 마중 / 화두(話頭) 또는 화두(火頭) / 눈보라 / 무두불(無頭佛) / 걸레의 경전 / 찔레꽃 / 입관 / 폭설 / 나비의 울음 / 햇빛의 조문 / 묵정밭의 비밀 / 대못
제3부
저물녘 또는 저물역(驛) / 손톱 / 통증의 미학 / 석류의 즐거운 통증 읽기 / 장어 / 골절 / 구두를 닦다 / 넙치가 사는 법 / 생토의 비결 / 딱따구리의 독서법 / 무노동(無勞動) 유임금(有賃金) / 가난할 때는, / 멍에 / 소와 즐겁게 쟁기질하는 방법 / 같은 꼴 닮은 꽃 / 귀가 사는 법
제4부
궁핍해서 좋다 / 죽음의 질문 / 즐거운 폭력 / 게놈을 읽다 / 못과 망치 / 주차장 / 죽로차(竹露茶) / 폐차에 대한 보고서 / 가출 또는 출가로 사는 법 / 구제역(口蹄驛) / 남극의 눈물 / 화사(火蛇) 또는 화사(花蛇) / 나도 내게 반성하기로 했다 /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 / 칼의 노래 /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 작품 해설:역설의 시학 - 맹문재
■ 시인의 말
40여 년 시를 쓴다고 애를 썼어도
언제나 부족한 글을 만나는 것은
한사코 괴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고슴도치도 제 자식 귀여워하듯
여러 부족한 시, 세상에 내보는
안타까움과 부끄러움 가득하지만
그래도 풀씨 되어 날아다니다
누군가의 창가에선 한 송이 꽃으로
자라길 바라는 소망, 또한 빌어봅니다
■ 추천의 글
살아 있는 한 살려고 애쓰는 것이다. 독수리가 토끼의 과녁에 발톱을 넣듯이. 사자가 목을 물자 네 발로 허공을 걸어가는 물소처럼. 세상은 온통 약육강식에 적자생존인가. 하지만 바이러스도 사람이 죽으면 저도 죽어야 한다. 생명체 종(種)의 하나인 인간이 살려고 스스로를 죽음의 낭떠러지로 끌고 올라간다.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격렬한 대화 행위인가.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자주 별유천지의 비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마스크로 입을 봉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자기모순인지. 강하고 크고 뛰어난 시인 강태승이 두 번째 시집에 쏟은 내공의 힘이 내 뼈를 시리게 한다. 살이 떨리게 한다. 상생의 길을 찾는 시인의 노력이 눈물겹다. 신춘문예에 천 번 떨어졌고 문학상을 열 번 받았다. 칼로 나무에 글자를 새긴 것 같다. 진천 백곡 촌놈이 시를 아주 촌스럽게 썼다. 읽고 놀라지 마시라. 시퍼런 언어의 울돌목에서 반드시 살아남을 시인이다.
―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 작품 세계
역설은 강태승 시인의 시 세계를 형성하는 토대이자 추구하는 가치이고 지향하는 문체이다. 시인은 이 세계의 대상들을 모순되게 묘사하면서 본질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이 세계의 본질 혹은 진리를 단순하게 나타낼 수 없음을 체득하고 인습화된 지각을 넘는 모순어법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자가 목을 물자 네 발로 허공을 걸어가는 물소
물소의 눈빛 추억 이념 가족의 근황은 묻지 않고
뱃속에 저장된 수만 송이 꽃과 풀잎 속의 햇빛
달빛의 무게에 춘하추동 화인(火印)은 보지 않고,
사자는 물소의 목숨에 이빨을 박고 매달렸다
단지 배고플 뿐이고 고픈 이전으로 가야 한다
목숨이 아니라 부른 배이고 싶다는 사자와
네가 문 것은 아들이 기다리는 어미의 목이라는,
―「격렬한 대화」 부분
위의 작품에서 “사자가 목을 물자 네 발로 허공을 걸어가는 물소”의 모습이 역력하다. “사자”는 “물소의 눈빛 추억 이념 가족의 근황은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뱃속에 저장된 수만 송이 꽃과 풀잎 속의 햇빛”이며 “달빛의 무게에 춘하추동 화인(火印)”도 보지 않는다. “사자”는 “단지 배고플 뿐”이어서 “고픈 이전으로 가”려고 “물소의 목숨에 이빨을 박고 매달”리는 것이다.
작품의 화자는 “목숨이 아니라 부른 배이고 싶다는 사자와/네가 문 것은 아들이 기다리는 어미의 목이라는”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침묵 이전의 이전으로 가라앉고 있는 벌판”을 바라보며 “무슨 대화가 노을이 배경으로 깔리고 서늘한가”라고, “죽어야 하는 살아야 하는 시간이 저리 아늑한가”라고 묻는다.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깨달음의 표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편을 일방적으로 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의 차원을 넘어 삶과 죽음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두 존재의 운명을 최대한 긍정한다. “제 몸을 버리고 아들에게 돌아”간 “물소”와 “소가 던지고 간 고기로 배고픔을 잊은 사자”의 운명을 인정하는 것이다. 생을 다한 한쪽과 생을 시작하는 다른 한쪽의 운명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소와 끝내 한마디 대화하지 못하고/사자에게 끝끝내 한마디 건네지 못한 하루가,/물소의 뼈만 벌판에 남긴 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모습으로 대화한다.
위의 작품의 제목이 “격렬한 대화”이지만 “사자”와 “물소”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없다. 단지 죽이고 죽는 상황만 보인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상황을 통해 더 많은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역설을 통해 이 세계의 본질 혹은 진리를 더욱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생존 조건이 절박한 세렝게티의 “사자”와 “물소” 간의 “대화”란 인간이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들에게 “대화”는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여유나 분위기의 상황이 아니라 생사가 놓여 있을 뿐이다. 그것이 자연계의 엄연한 본질인 것이다. (중략)
화자는 역설로써 대상의 본질 혹은 진리를 총체적으로 인식한다.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주관성을 억제하고 이미지를 집중해 존재의 의의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존재의 하강과 상승, 슬픔과 기쁨, 어둠과 밝음, 절망과 희망, 소멸과 영원 등이 배제되지 않는다. 화자는 자신의 의지를 반영해 설명하거나 의도를 가지고 사건화하지 않고 본질 자체를 살린다. 감정의 과잉을 절제하고 인식을 무겁게 하며 묘사의 문체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격렬한 대화
사자가 목을 물자 네 발로 허공을 걸어가는 물소
물소의 눈빛 추억 이념 가족의 근황은 묻지 않고
뱃속에 저장된 수만 송이 꽃과 풀잎 속의 햇빛
달빛의 무게에 춘하추동 화인(火印)은 보지 않고,
사자는 물소의 목숨에 이빨을 박고 매달렸다
단지 배고플 뿐이고 고픈 이전으로 가야 한다
목숨이 아니라 부른 배이고 싶다는 사자와
네가 문 것은 아들이 기다리는 어미의 목이라는,
풍경을 경치로 저물고 있는 세렝게티
침묵 이전의 이전으로 가라앉고 있는 벌판
무슨 대화가 노을이 배경으로 깔리고 서늘한가
죽어야 하는 살아야 하는 시간이 저리 아늑한가
물소는 제 몸을 버리고 아들에게 돌아갔다
소가 던지고 간 고기로 배고픔을 잊은 사자
물소와 끝내 한마디 대화하지 못하고
사자에게 끝끝내 한마디 건네지 못한 하루가,
물소의 뼈만 벌판에 남긴 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강둑에선 하마를 질문하듯이 물어뜯는 하이에나
정답인 양 남은 코끼리의 뼈를 탐색하는 독수리
표범은 나무 위에서 발톱을 슬슬 긁고 있다.
선과 악의 결투?
햇빛이 비추자 말뚝에서 그림자가 걸어 나온다,를
쫓겨났다 물러났다 밀려났다 등장했다 발견했다
그 낱말들이 서로 밀고 당기느라 야단법석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고 반은 틀리고 반은 맞은,
아니면 전부 맞고 전부 틀린 전부 틀리면서 맞은
그림자가 길어지더라도 말뚝은 고요하다
짧아져도 가벼워지지 않는 말뚝에 매인 소를
풀면 말뚝은 단지 땅에 박혀 있는 나무,
그림자가 제 몸으로 다시 돌아오는 저녁이면
말뚝은 어디에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이 말뚝보다 깊이 어둠에 박히는 것이다
그 질문의 그림자도 어디에 숨었을까, 라는
말뚝을 품은 채 걸으면 그림자처럼 길어지는
따라오는 동행하는 멀어지는 말뚝의 힘
말뚝을 뽑으면 그림자도 뽑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질문을 밀고 들어와 가지를 벋는다
꽃이 슬슬 피는 것은 새로운 말뚝이 되는 것
선은 악으로 악은 선으로 뽑혀지지 않는가, 라는
거대한 말뚝을 박으니 비로소 고요해지는 말뚝에
불을 붙이자 그림자가 돌아오다 모두 타버린다.
낙화
김 시인은 신춘문예에 백 번 떨어졌다
장 시인은 삼백 번 떨어졌다 하고
최 시인은 웃으면서 오백 번 하면서
술잔을 돌리다가 한 잔 더 마신다
나는 속으로 천 번 떨어졌다고
하려다 문득 얼마나 무능하면!
핀잔 들을까 봐 가만히 웃으면서
연거푸 석 잔을 마시다가
에헤라 꽃이 많이 떨어졌으니
그만큼 열매도 맺히지 않을까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마다 타고난 시기에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다시 석 잔을 혼자서 마시니
뼛속마다 함빡 피었는지 볼이 붉다
아, 또 떨어질 꽃잎이 많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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