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히포가 말씀하시길
이근자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26|146×210×14 mm|296쪽
15,500원|ISBN 979-11-308-1563-3 03810 | 2020.02.22
■ 도서 소개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정교한 서사
이근자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 『히포가 말씀하시길』이 <푸른사상 소설선 26>으로 간행되었다. 작가는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갈등을 통해 과연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통상 따뜻하고 포용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가족의 의미와 달리 가부장제의 균열, 가족 이기주의, 가족 구성원의 위선 등을 보여주며 혈연 공동체보다도 가상 공동체로서의 가족 개념에 관심을 보인다. 새로운 시대의 가족 서사를 정교하고도 치밀한 문장으로 펼치고 있다.
■ 작가 소개
이근자 李根子
201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닷가에 고양이의자가 있었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18년 현진건문학상에 「지하철과 달팽이」가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으며, 2019년 「옥시모론의 시계」가 극단 연인무대에 의해 창작극으로 만들어져 상연되었다.
(E-mail:macpen62@daum.net)
■ 목차
■ 책머리에
댈러스의 침묵
여섯 번째 직녀
지하철과 달팽이
옥시모론의 시계
선사기 정원
히포가 말씀하시길
루비 왕관
생일
속불꽃
바닷가에 고양이의자가 있었다
■ 작품 해설:기억을 소환하는 방식 - 황현희
■ 출판사 리뷰
이근자의 첫 번째 소설집 『히포가 말씀하시길』은 다양한 가족 군상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굴곡을 다룬 가족서사이다. 통상 따뜻함, 포용으로 정의되는 가족의 의미와 달리 가족의 중심축인 가부장제의 균열, 가족의 이기주의와 위선을 보여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도록 만든다. 가족도 결국은 혈연보다도 상상과 가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것이다.
표제작인 「히포가 말씀하시길」은 아버지를 희화화하며 가족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급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아빠 히포에게 신장을 이식해주는 검사를 받기 위해 가족들이 병원에 모인다. 신장을 떼어주기 싫어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위선적이며 이기주의로 팽배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신장이식 이야기가 오가며 가족의 모습은 파편화되고, 허울만 중심뿐인 아버지와 실질적인 가부장은 어머니였음이 드러난다.
새 외제차에 치인 피투성이 노파를 외면한 여자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지하철과 달팽이」는 분열된 가족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 ‘거리두기’임을 보여준다.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한 것처럼 가족 사이에서도 거리 두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가족 밖으로 탈주하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는 「옥시모론의 시계」, 입양 가족에 대한 이야기 「속불꽃」 외 여섯 편의 작품에서 작가는 가족의 새로운 정의와 인물 간의 갈등을 정교한 문장과 치밀한 이야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뿔
밤이 되면 내 머리엔
여러 개의 모양 다른 뿔이 생겨
그 뿔은 제 모양 같은
여러 개의 이야기가 되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해야만 하는 이야기
하고 싶어도 뱉어지지 않는 이야기
해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
이야기가 어거지가 되면
날카로운 뿔들이 제 모양 만치
생채기를 낸다 처음이 아닌.
긴 글을 쓰기 전 처음이자 유일하게 쓴 시입니다.
시간이 지나 읽어보니 소설 쓰는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는 어떤 이의 미래를 알려주는 의지처럼 여겨집니다. 어거지가 아니길, 그 뿔이 가리키는 곳이 진리의 핵에 다다르기를 소망합니다.
그동안 많이 덜어냈습니다. 그렇다고 머릿속이 질서 정연하고 명확한 우주의 거시적인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극도로 미시적인 세계에도 그 나름의 질서가 있다더군요. 하지만 미세한 입자는 아주 작은 파동에도 영향을 받고 그건 또 다른 나의 한 시절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제 첫 번째 책으로 매듭 하나를 엮습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오랫동안 두려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꼭 안고 나를 향한 채찍으로 삼겠습니다. 내 앞에 길고 먼 길이 보입니다. 두려움만이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그 길 내내 친구 혹은 스승이 되어 희미한 불빛으로 빛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엄창석 선생님과 작마 문우님,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주셔요. 나의 일부분인 아버지 이제인, 독서 유전자를 물려주신 엄마 류화진과 가족들, 좌청룡과 우백호. 늘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배영숙과 이원숙. 부족한 저를 북돋우는 모든 분께, 꾸준히 쓰는 것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추천의 글
이근자의 소설을 읽으면 우선 이 작가가 문장을 다스리는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히포가 말씀하시길」에서 우리는 이 작가가 이끄는 활달한 문장 솜씨에 탄복하다가 이내 자기도 모르게 대화에서는 음성 지원을, 서술 부문에서는 매 장면마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영상 지원을 받는다. 그러면서 작가가 정교하게 쳐놓은 이야기의 덫 속으로 빨려 들어가 등장인물마다의 핑계와 사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옥시모론의 시계」 속의 부부 이야기 역시 출발은 소풍길처럼 경쾌하나 끝에 가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부부간에도 저마다 품고 사는 커다란 가슴속 사연으로 어긋나는 시간과도 같은 슬픔과 먹먹함이다. 신인작가의 첫 창작집인데, 이 작가의 미래를 말하듯 이미 고수의 솜씨가 작품 곳곳에 배어난다.
— 이순원(소설가)
이 작가의 글은 인물의 굴곡진 삶과 의식의 흐름을 냉정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과 꿈 사이, 허구의 심연에서 진실을 건져 올려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세상, 살 만한 곳이다.
— 하청호(시인·아동문학가)
■ 작품 해설 중에서
이근자의 작품은 가족서사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은 소재를 넘어 갈등을 드러내는 주제의 중심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공간에서 다르게 변주되는 가족의 형태를 보면서 가족은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가족의 정의를 다시 규정하도록 그녀의 작품은 독자에게 요구한다. “가족이란 남성과 여성 사이,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장기적인 관계 혹은 공동 거주를 바탕으로 한 애매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이데올로기적 관념”(최시한, 「가족 이데올로기와 문학 연구」)이다. 가족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규범의 중심이기에 우리 사회는 심지어 국가나 민족조차도 확대된 가족으로 보기에 가족의 외부를 상상하기조차 힘들게 한다.
감춰진 욕망을 작동시키는 기제인 가족 이데올로기는 구성원의 갈등을 표면으로 드러내기 전에는 인식할 수 없는 집단무의식처럼 감추어져 있다. 사회 구성원의 정서와 삶의 경험을 채색하는 이데올로기, 가족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존재 양식이다. 특히 가족의 중심에 있는 가부장은 가족의 삶을 통제하는 힘의 구심점이다. 가부장이란 절대 권력은 단순히 가정경제의 중심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중심축이기도 했다. 이제 가족의 중심축인 가부장제도 서서히 균열의 조짐을 곳곳에서 보인다. 이근자의 작품은 이러한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족도 상상의 공동체, 가상의 구축물임을 보여준다.
― 황현희(문학평론가)
■ 책 속으로
오줌을 누려는지 우가 방에서 나오며 바지춤을 더듬었다. 대주는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가 변기 앞에 세웠다. 우는 오줌 줄기가 끊어지자 털썩, 대주의 품에 기대며 중얼댔다.
“엄마, 너무 깜깜해. 무서워…….”
우는 꽉 잡아달라고 했다. 대주는 아이를 안은 채 소파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문득 아버지의 마지막 시계를 받았던 신혼 초, 그 근래의 일이 떠올랐다. 아내가 연락 없이 하룻밤 집을 비웠다. 아내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다시는 그럴 일 없다고 울며 용서를 구해 덮어둔 일이었다. 아버지의 시계와 아내의 가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연결이었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면 날씨에 상관없이 강제로 입어야 했던 교복이 떠올랐다. 철 이르게 두껍게 입은 동복 위로 쏟아지던 따가운 햇살에 끈끈하게 흐르던 땀, 꽉 껴안아도 멈추지 못하던 어머니의 칼질, 우산 없이 맞아야 했던 추운 겨울의 빗줄기, 여름 장마……. 몸에서 나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도 피할 수 없었던 빛살처럼, 아버지에 대한 역겨운 기억이 이 밤에 다시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유일까. 아내는 당연히 아버지와 다르다. 아내와 아버지를 관련짓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속이 거북하고 머리가 아팠다. 아이를 침대에 뉘고 집 안의 불을 하나씩 켰다. 베란다로 가 창문을 열고 두 귀를 밖으로 내보냈다. 저녁에서 한밤중으로 가는 바깥의 소리를 몰두해 들었다. 사람이나 사물의 수런거림이 잦아들며 자신 안의 외침이 크게 들리는 것을 대주는 속수무책으로 들었다. 아버지는 볼리비아의 정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 아내는 어디에 갔던 걸까. 오늘은? 구역질이 났다. 화장실로 가 변기를 끌어안았다. 토해도 토해도 김밥은 끊임없이 역류했다. 내장이 뽑히는 것 같았다. 너무 피곤했다. 내일은 일요일이고 월요일엔 공한나가 버티고 있는 직장으로 출근을 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가 집을 비워도 대주는 대학 수능을 치렀고 아버지는 시계를 지구 건너편으로 보냈다. 대주는 물로 입을 헹구고 침대로 갔다. 둥글게 몸을 말고 쪼그려 누웠다.
― 「옥시모론의 시계」(108쪽~109쪽)
부작용에 대해 상세히 알려달라고 하자 의사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이미, 검진과나 사회복지사에게 충분히 안내받지 않았나요?”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서요. ……”
하 여사의 공손한 말투에 누그러진 의사는 가족들의 불안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정밀검사에서 적격 판정이 났고 수혜자가 가족이라 하더라도, 인체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장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그래서 신장이식을 받은 사람들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인간은 세포까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과잉방어를 걱정해야 할 정도라니.
“그럼 공여자의 부작용은요?”
하 여사가 환자와 반대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졌다. 의사는 오래된 사례부터 들었다. 이차대전에서 신장 하나를 잃은 군인과 부상을 입지 않은 동료들이 있었다. 반백년 뒤에 두 사례군을 추적해 비교하니 신장병이나 단백뇨, 고혈압의 발병 빈도에 차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건 외국의 얘기였다. 국내에서 시술한 공여자를 대상으로 한 삼천여 명의 추적 검사도 결과가 비슷하다고 했다. 하 여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음…… 제 친구 중에 두통이 가족력인 사람이 있어요. 40년이나 두통에 시달려 애도 낳지 않은 친구예요. 그 친구 동생도 두통으로 고생해요. 둘의 공통점이 맹장이 없대요. 얼마 전에 학회에 보고됐었지요? 맹장절제술과 두통이 관련 있다고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죠. 조물주가 콩팥을 이유 없이 두 개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맹장과 두통처럼 연관이 없어 보이거나 아직 보고되지 않고 쉬쉬하며 의사들만 아는 사실을 알려주세요. 가능하다면 제 콩팥, 애들 아빠한테 줄 거예요. 하지만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우선이지요.”
― 「히포가 말씀하시길」(158쪽~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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