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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노컷뉴스] 유경숙, <세상, 그물코의 비밀>

by 푸른사상 2019. 5. 27.


[신간]유경숙 산문집, '세상, 그물코의 비밀'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통찰과 사유, 유머러스하게 펼쳐



 

소설가 유경숙이 산문집 '세상, 그물코의 비밀'을 냈다. 

일상의 단상, 여행기, 그림 감상기, 소설 독후감. 50여 편의 산문에는 동서양 고전과 사상, 그림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찰이 담겨 있다. 소소한 일상과 현실에서 길어올린 사유를 유머러스하게 펼친다. 

몸이 아팠던 작가는 자신이 사는 증미산 숲을 거닐며 회복하게 되는데, 태풍으로 인해 하룻밤 새 둥지를 잃어버린 꾀꼬리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이렇게 적는다. "병이 든 나에게는 자연이 학교이고 의사였다. 돌아온 꾀꼬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여도 귀가 열리지 않거나 마음이 가닿지 않으면 도시 소음에 묻혀 그냥 스쳐 지나갈 소리일 뿐이다." 이 대목을 접하면서 과문불입을 떠올린다. 인터넷 초스피드 시대에 사람들과 관계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저자 유경숙은 사생활도 과감하게 드러낸다. 부부싸움으로 남편이 신경성 위염이 또 재발한 모양이라며 "시베리아 냉기가 더 지속되다간 사람 잡겠네"라고 중얼거린다. 저자는집에 걸린 단원의 그림 기우도의 풍경에서 남편을 떠올리면서 화해에 이른다. 기우도는 석양을 받으며 늙은 농부가 암소의 등을 타고 언덕을 내려와 귀가하는 한가로운 분위기를 묘사했다. 저자는 이렇게 마음을 표현한다. "기우도를 보고 있자니, 사립문 밖까지 나와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릴 농부의 아내가 저 멀리 서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 냉전은 이제 그만 거둬들여야겠다.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리하여 오늘 밤엔 수다스런 주모가 되어 문간방 남자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팔아야겠다."

"유상앵비는 편편금이요, 버드나무 위로 꾀꼬리 나는 모양 금 조각같이 아름답고(유산가 중에 봄버들을 노래한 대목). 저자는 빠름의 공포에 갇힌 자신을 구제하려고 요즘은 느림의 미학의 빠져 버드나무 예찬론을 편다. 성이 류(柳)씨인 저자는 수양버들가지처럼 유연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라고 조상이 버들 류(柳) 자를 뿌리로 주셨나 보다고 했다. 그의 버드나무 예찬은 이렇게 맺는다. "버드나무처럼 누군가에게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상대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늘 한켠을 내어줄 수 있다면, 나, 그렇게 한 그루 버드나무처럼 매양 흔들리며 살아가고 싶다." 

'한국 카잔자키스 친구들' 모임 회원인 저자는 카잔자키스의 장편 소설 '전쟁과 신부'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내전보다 훨씬 더 참혹한 동족상잔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왜 세계적 걸작이 나오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종식된 전쟁과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카잔자키스는 행복한 작가였다. 피의 내전이 종식되고 '통일된 민족'을 바라보며 사상검증까지 끝낸 상태에서 이 소설을 쓸 수 있었으니까...남북의 어느 작가에게든 진절머리 나는 이 대치 상태는 깊이 병들어가고 있는 시간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암컷의 속울음' 등 다른 산문에는 저자의 어떤 생각이 펼쳐졌을까 궁금하다.


[노컷뉴스], 김영태 기자, 201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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