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붉은 수레
강경호 지음|146×210×16 mm|224쪽|15,900원
ISBN 979-11-308-1414-8 03810 | 2019.3.15.
■ 도서 소개
붉은 몽상을 꾸는 소년의 성장 이야기
강경호 소설 『푸른 밤 붉은 수레』가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매일 밤 발칙하고 엉뚱한 몽상을 꾸는 소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 저자 소개
강경호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국문과를 졸업했다.
장편으로 『그날 이전』 『에델바이스』 『천상의 묵시록』(전 2권) 『포세이돈의 후예들』이, 소설집으로 『조문시에서 7일』이 있다.
■ 출판사 리뷰
소년이 마주한 푸른 하늘과 바다로 둘러싸인 세상은 어느 순간부터 붉기만 하다. ‘하늘과 바다가 똑같이 핏빛으로 물든 것은 사악한 기운의 징조’라는 늙은 어부의 말을 빌리자면 소년의 세상에도 악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을 음란하고도 허무맹랑한 몽상에 빠져 사는 소년이지만 그것은 소년이 그만큼 순수하고 선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때문에 선악의 분별이 어려운 사건을 마주하면서도 그는 ‘선의’라는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괴짜 같기만 한 소년의 이야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꿈 많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하다. 푸른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는 만큼 성장해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묵호 어달 어판장에 양미리가 산더미처럼 쌓였을 때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사람들은 10년 만의 풍어라고 했지만 태어난 아이는 풍요를 누리기는커녕 어느 누구의 주목조차 받질 못합니다. 아이는 할머니 손에서 외톨이로 자랍니다. 그러나 향기 맡기를 좋아하고 꿈과 공상에 젖어 들기를 즐기며, 태생적으로 밝은 성격을 지녔습니다. 발칙한 성적 호기심에서 나온 음충한 몽상만 제외한다면 더없이 선량한 소년입니다.
어느 날, 소년은 진홍의 바다와 붉은 굽이를 으르렁대는 성난 파도와 가랑잎마냥 풍랑에 휘둘리는 배를 봅니다. 소년이 동호리에 살던 어릴 적 집 뒤편 언덕배기에서 늘 보던 평화롭고 고즈넉한 바다가 아닙니다. 그 진홍의 바다는 소년이 장차 살아가야 할 험난한 세상이고 삶의 예시입니다.
소년 주변에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진홍의 하늘과 진홍의 바다가 있게 한 장본인입니다. 그는 종교를 창시하는 게 목적이지만 궁극은 악의 기운을 온 세상에 퍼트려 사람이 부재한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는 사람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 시공을 초월하고 잔인한 성정의 괴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홍의 괴인이 악한 기운을 세상에 퍼트릴 때 소년은 운명적으로 괴인과 맞서려 합니다. 소년에겐 턱없이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어둠의 갱에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소년에게도 좋은 나날이 있었습니다. 친자 이상으로 자신을 사랑한 양부모와 그 누이들, 학창 시절 우정으로 맺어져 추억을 쌓던 절친 쓰리똘,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상과 꿈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여유롭고 안락한 생활이 소년의 기억에 남은 행복한 시간임엔 틀림없습니다.
이 소설은 선의를 지닌 한 소년의 인생 유전입니다. 대조적으로 소년이 증오하고 복수를 다짐한 한 대상의 악의 행적도 이 소설의 요소입니다. 이 선악의 충돌은 우리의 세상에 보편적 현상일 수 있으나 소년에게 있어선 목숨을 걸 만큼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을 소설로 엮었습니다. 그게 공상이든, 환상이든, 또는 현실이든 분명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낼 것입니다.
■ 책 속으로
시간은 늘 제자리인 듯한데 세월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한 해가 이윽고 저물더니 곧 새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희망찬 새해’라고 말들 하지만 바깥은 희망을 가꾸기엔 더없이 춥고 스산했다. 어찌 보면 계절은 사람의 생애와 닮은꼴이다. 유년기를 봄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성숙기인 청춘 시절은 여름일 테고, 가을은 인생의 절정기를 지난 완숙기이며 겨울은 삶의 마감을 앞둔 노년기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새해의 시작이 엄동설한 겨울이라는 게 부조화일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 부조화를 고수하는 건 겨울을 일찍 장사지내면 따스한 봄이 한층 일찍 오리라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113쪽)
돌이켜보면 지난 무신년은 성우에게 있어서 축복의 해였다. 학교생활은 물론 교우관계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미워하던 은영이 마음을 열어 오빠로 인정해준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복됨이 아닐 수 없었다. 또 양부인 최중대가 성우에게 귀한 백수정 원석을 맡길 정도로 성우를 친애하는 점도 성우에게 있어서 기쁨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성우는 이제 어깨를 펴고 당당해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양부의 바람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소명이 생겨 그게 부담일 수 있으나, 그 점은 장차 양부의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감당해야 행복한 책무일 뿐이었다. (114쪽)
선실 안쪽에 옷 보따리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뭔가가 놓여 있었다. 못 보던 물건이어서 의아스러웠다. 한 발짝 가까이 가서 팔을 뻗치면 닿을 수 있는 거린데 왠지 손을 대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무엇인지 확인은 해야 하지 않는가. 마침 빗자루가 있어 짐짓 바닥을 쓰는 척하면서 푸르스름한 그 뭔가를 툭 건드렸다. 예상치 않게도 약간 물렁한 느낌을 받았다. 물건이 아닌 것이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어 봉수를 불렀다. 그런데 봉수가 무엇을 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크게 서너 번 더 불렀다. 대답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덮개가 열린 상태이긴 해도 여전히 불안해 그냥 선실을 나가고 싶었다. 선실을 나가려면 사다리 모양의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그만이었다.
아! 그런데도 나는 선실을 나갈 수 없었다. 타의에 의해 내 발이 제압되지 않았다면 나는 단숨에 선실을 나갔을 것이다. 계단에 막 발을 올리려는 그 차제였다. 별안간 어떤 억센 손아귀가 내 발목을 움켜잡았다. 기겁을 했다. 서운하게도 그 누구도 선실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도 내겐 불행이었다. 나는 잡힌 발을 빼려고 버둥댔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서움에 질러 뭐가 내 발목을 잡았는지 감히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단지 안쪽에 놓였던 푸르스름한 보따리 같은 게 내 발목을 잡지 않았나 생각할 따름이었다.
발을 빼려고 계속해서 버둥거렸다. 그럴수록 발목을 잡은 손아귀는 더욱 옥죄여졌고 고통도 더했다. 위기를 느꼈다. 그러나 짧은 명을 타고났을지라도 당장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그런 중에 선실 입구에 사람의 얼굴이 힐끗 비쳤다. 봉수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는 그 얼굴이 나를 살린 셈이다. 얼굴이 비쳤을 때 동시에 발목을 잡은 손아귀가 약간 느슨해졌다. 기회였다. (중략)
그러나 의구심도 잠시, 눈앞에서 뭔가 번뜩했다. 어쩌면 인광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게 실마리였다. 나는 비로소 그 푸르스름한 보따리의 실체가 화수도인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확신이 서자 곧 화수도인을 응징하기 위해 가격할 거리를 찾았으나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분하게도 그때 새로운 시공이 열릴 줄이야. 곧 시야가 불분명해졌고 의식도 가물가물해졌다. (147~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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