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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문학뉴스] 조호진 외,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

by 푸른사상 2018. 12. 26.

우리 발 디딘 곳 모두 고공(高空)이다

 


송경동 김해화 등 일과시 동인들 9번째 시집 출간


일과 시동인들의 아홉 번 째 시집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21일 푸른사상에서 출간됐다. 김해화, 서정홍, 송경동 등 노동 현장에서, 농촌에서, 거리에서, 땀 흘려 일하며 시를 써온 동인들이 펴낸 시집이다.

일과 시동인들은 새 시집에서 세상이 아프니까,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펑펑 울자고, 마음 독하게 먹고 싸우자고 한다. <고공> 은 아픈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각자의 일터에서 싸우는 이들의 절박한 열망으로 쓰여진 시집인 셈이다.

 

(일과시 동인시집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 표지)


오철수 시인은 발문에서 일과시 동인들이 이겨내고 싶어 하는 현실을 조각보처럼 이어붙인다면 그 작품의 제목은 망할 놈의 세상이 될 것이라며 이 세상을 온몸으로 사랑했던 자의 이 쓸쓸한 죽음을 딛고 시인들은 다시 길을 만들 것이라고 적었다.

맹문재 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추천의 글에서 탐욕적인 개인주의와 극단적인 불평등조차 긍정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플 수밖에 없다일과 시 시인들은 세상이 아픈데 아파하지 않는 자들에 맞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펑펑 울자고, 마음 독하게 먹고 싸우자고 나선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시인들의 결연한 의지와 행동은 아픈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픔의 근원과 싸우기 위한 것이기에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시집에는 조호진 이한주 오진엽 송경동 손상렬 서정홍 김해화 김용만 김명환 등 10명의 시인이 작품을 실었다.


 

(지난 2014년 모임을 가진 일과시 동인들)



고공은 따로 있지 않다

                                    송경동


우리 모두는 고공을 산다

오늘로 16일째

네 번째 단식에 들어간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의 깎여진 볼과 졸아든 위벽이 오르고 있는

홀쭉한 고공도 있고

오늘로 126일째

두 번째 굴뚝 농성에 들어간

스타플렉스 해고자 홍기탁과 박준호가

75m 아래 지상에 내려놓은

밧줄 하나의 가느다란 고공도 있고

오늘로 195일째

전주시청 앞 조명탑 위에서

역시 두 번째 망루 농성 중인 전주택시 털북숭이 유인원

김재주의 닭장 같은, 딸은 알고

어머니는 모르는 고공도 있지만

평지라고 고공 아닌 곳이 없다

고공으로 치솟는 집값 땅값 전셋값 월세

지상에 집 한 칸 갖지 못한 세입자들이 되어

출근할 공장 하나 사무실 하나 갖지 못한 실업의 축 늘어진 걸음이 되어

5년 안에 80%가 거덜나는 위태로운 24시간 풀타임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

개 사료 값도 안 되는 쌀값에 아스팔트를 오르내리는 농민이 되어

어려서부터 순위 경쟁에 쫓기며 잔업철야의 학습노동을 해야 하는 청소년의 삶

더 가팔라진 가부장제 성폭력 아래 짓밟혀야 하는 여성들의 삶

요양원에라도 갇히면 다행 고독사가 다반사인 노령의 삶들까지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는 이들의 자살공화국

나날이 농성 아닌 삶이, 투쟁 아닌 삶이, 저항 아닌 삶이

그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누구도 나를 자르지 않았는데도

이 세계로부터 근원적으로 해고당한 듯한 슬픔의 고공

서로가 서로에게 절벽이 되고 외면이 되고 칼날이 되고 서글픔이 되는 단절의 고공

언제든지 나는 이 세계로부터 계약 종료

계약 해지 당할 수 있다는 절망의 고공

이 고공에서 우리 이제 그만

내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 누구의 삶과 영혼도 뿌리 뽑히지 않는

평등 평화의 평지를

다시 일구어야 하지 않겠는가


- [문학뉴스], 2018.12.21

링크: http://munhaknews.com/?p=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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