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문재 / 전태일
나는 완전에 가까운 그의 결단을/ 지천명처럼 믿네// 그에게는 하루 14시간의 작업이나/ 단수(斷水) 같은 월급이/ 문제가 아니었네// 위장병이나/ 화장실조차 막는 금지도/ 문제가 아니었네// 바늘로 졸음을 찌르며/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일이/ 문제였네// 내게 인정으로 배수진 치는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최후까지 알려줄 것이네
- 시집『기룬 어린 양들』(푸른사상, 2013)
..............................................................................................................
지난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사른 지 47년째 되는 날이다.
그리고 14일은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이었다.
그의 딸인 박근혜는 영어의 몸이 되어 있다.
큰 물줄기를 관통하며 흐르는 역사의 파노라마 앞에서 마음이 무겁다.
그동안 전태일에 대한 숱한 평가 작업이 있었고, 그를 기리는 여러 사업을 해왔으며 또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업의 규모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래 3천500억이 투입된 박정희 기념사업에 비하면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족지혈 수준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사의 새로운 전기를 연 계기가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 어떤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전 생애를 바쳐 쌓아올린 연구업적과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에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다준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삶의 진정한 의미와 노동자의 권익에 대한 자각이 널리 확산되었으며, 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반드시 최우선이고 지고지선의 가치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전태일은 또렷한 역사적 사실이면서 노동 운동의 현재적 상징이다.
다만 전태일 정신을 단지 노동문제나 자기희생의 정신만 강조되는 수준에 가둬두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다시금 전태일 정신을 환기해내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불의에 맞선 용기와 더불어 전태일 정신의 진면목인 ‘인정으로 배수진 치는 법’을 계승하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시인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그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훗날 공고를 나와 노동자의 삶을 산 이력을 갖고 있다.
‘전태일 평전’을 끼고 다닌 시인에게 전태일의 삶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게 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노동운동 차원에만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온기를 더 중요시 여겼다.
“우리는 전태일에게서 ‘가장 인간적일 때 가장 진보적이 된다’는 명제를 배우게 된다”고 쓴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서문을 기억한다.
그렇듯 시인은 전태일 이후 ‘노동을 하다가 세상을 뜬 노동자들’의 삶을 시로써 낱낱이 기록해 시집으로 묶었다.
이름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내던진 그들의 희생이야말로 한국사회와 역사를 조금씩 전진시켰다고 그는 믿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유명 정치인보다도 그들의 죽음을 무릅쓴 헌신적인 삶이 역사적ㆍ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전태일의 고향인 대구에서 단 한 푼 관의 지원 없이 시민들의 성금만으로 3회째 ‘전태일 시민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여태껏 전태일에게 덧씌워진 ‘과격불순분자’라는 편견을 벗기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알리는 좋은 기회이다.
‘전태일 사상은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라고 평전에 밝힌 조영래 변호사의 고향도 대구다.
장차는 역대 대통령들의 고향보다 전태일, 조영래의 고향이란 사실에 더 자부심을 갖는 대구가 되길 기대한다.
- [대구일보] 2017.11.16.
'푸른사상 미디어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산뉴스투데이] 장세련 동화, <마법의 지팡이> (0) | 2017.11.21 |
---|---|
[울산매일] 장세련 동화, <마법의 지팡이> (0) | 2017.11.21 |
[울산저널] 조동일, 이은숙 <한국문화, 한눈에 보인다> (0) | 2017.11.16 |
[연합뉴스] 김현경 외 산문집, <우리는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0) | 2017.11.15 |
[경기신문] 차옥혜 시집, <숲 거울> (0) | 2017.11.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