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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세계일보] 심아진, <어쩌면, 진심입니다>

by 푸른사상 2017. 7. 21.

 

 

 

 

욕망·본능이 이끄는 삶 

진심은 과연 진실일까…

소설가 심아진 장편 ‘어쩌면, 진심입니다’

 

“진심에는 진심 아닌 것이 반드시 내포되어 있다.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 불완전함과 무능함을 갖고 있지 않다면 결코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은 누군가의 진심과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 진심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소설가 심아진(45·사진)은 최근 펴낸 자신의 장편 ‘어쩌면, 진심입니다’(푸른사상)에서 “진심과 진심 아닌 것의 간극 자체가 진심에 내재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진심의 진심을 탐사하는 그의 집요한 고투는 내내 이 장편에 핍진하게 그려진다. 

이 소설의 문제적 인물은 이희락. 그는 언제나 갈등하거나 방황하는 일 없는 진심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보인다.그는 늘 즐거웠고 주저하지 않았으며 고뇌 같은 것은 아예 할 줄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가까운 이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무관심했다. 

소설은 구성이 단순치 않다. 이희락 당사자 대신 그의 ‘진심’이라는 무형의 실체와 대화를 나눈다. 이 진심이라는 놈은 작가인 그의 아들에게 이희락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한다. 작가의 예리한 대적도 만만치 않다. 이희락의 진심이 “이희락이 즐기는 모습은 실은 즐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의 가면 같은 것이었을 뿐 표정 아래에는 늘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울함이 들러붙어 있었다”고 옹호하면 작가는 “이희락은 자기 이름에 딱 맞게 희희낙락하면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순간마저도 즐거운 놀이로 여겼을 사람”이라고 맞받는 식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진심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희락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내달리는 무책임한 유형인지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여덟 살 때 이희락 앞에서 목을 맨 어머니와 일찍 세상을 떠난 주변 인물들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성장한 불우한 내면을 들추어내면 어째서 그가 해갈 불가능한 욕망을 향해 자신과 주변을 망치게 됐는지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일그러진 ‘진심’과 정면으로 맞선 작가의 고백.

“그렇다. 이 이야기는 나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내 어머니의 머리를 벽에 짓이기고 여린 내 살에 벌건 손자국을 냈던 내 아버지를 가감 없이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 어쩌면 내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의 진심과 마지막으로 한판 거하게 붙어보기 위해서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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