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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김완 시집, 너덜겅 편지

by 푸른사상 2014. 10. 7.


 



1. 도서소개



김완의 시에 자리해 있는 대상이 내적 심리인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그의 시에 자리해 있는 대상은 자연물 등 외적 사물이나 시인 자신의 행위인 경우가 좀 더 많다. 이때의 외적 사물이나 시인 자신의 행위는 마땅히 주관적인 의식이나 상념이 아니라 객관적인 현상이나 사실로 존재한다. 시인 자신이 시의 대상으로 등장하더라도 저 자신의 내적 심리보다는 외적 행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그의 시의 대상이 갖고 있는 이러한 면은 다음의 시에 의해서도 익히 확인이 된다.


 벚꽃잎 분분분 날리는 

 부곡정에 들어선다

 연탄불 돼지 삼겹살 구이

 상추에 마늘, 매운 고추 얹어

 된장 쌈 하니 

 세상살이 여여(如如)하다

 도가지 헐어 내온 갓지에

 소주 한 잔 하니

 가야 할 길들 환해진다 

― 「봄, 소주」 전문


 이 시는 시인 자신의 행위를 묘사하는 데 초점이 있다. “벚꽃잎 분분분 날리는/부곡정에 들어”서는 시인 자신의 행위를 묘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이 시이다. 그렇다. 객관적인 삼인칭 대상인 ‘그’의 행위가 아니라 주관적인 일인칭 대상인 ‘나’의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연탄불 돼지 삼겹살 구이/상추에 마늘, 매운 고추 얹어/된장 쌈 하”는 행위, “도가지 헐어 내온 갓지에/소주 한 잔 하”는 행위 등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이들 행위와 관련해 그는 “세상살이 여여(如如)하다”는, “가야 할 길들 환해진다”는 정서적 반응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인 김완의 내적 심리가 토로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 이 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내적 심리는 한국 현대시의 한 경향이기도 한 병적인 멜랑콜리를 가리킨다. 그의 시가 이처럼 건강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잖은 한국 현대시는 병적인 멜랑콜리를 주된 정서로 받아들여 관심을 끌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그의 시에 수용되어 있는 건강한 정서는 남다른 바가 없지 않다. 등산이나 여행, 산책이나 소요 등의 과정에 만나는 사물과 경험, 그에 따른 긍정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시는 구질구질한 의식 내면의 병적인 멜랑콜리, 곧 우울, 좌절, 권태, 짜증, 불안, 초조, 상실 등 죽음의 정서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 김완이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의사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너무도 당연하다.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지 않은 의사가 어떻게 남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겠는가.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건강한 정서는 맑고 투명한 무구의 정서, 곧 순수의 정서를 뜻한다. 다음의 예 역시 그러한 뜻에서의 순수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삼복더위 속의 산행, 오랜 친구인

 내변산 직소폭포와 놀다가

 재백이 고개에서 내소사로 가는 길

 오전 11시 30분경

 구름이 해를 삼킨다

 짱짱하던 여름 햇빛 움찔 놀란다

 숲이 깜깜해지고 

 소란하던 풀벌레 울음소리 뚝 그친다

 노루새끼 오줌발 같은 비 뿌린다

 찰나의 고요…… 

 우주는 여여하구나

 미끈한 젊은 햇빛 다시 나온다

 매미들 와, 하고 일제히 아우성친다

― 「찰나」 전문


이 시에서 어둡고 음험한 정서, 구석지고 소외된 정서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여름 햇빛”처럼 밝고 환한 정서, 어린아이처럼 깨끗하고 순진한 정서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 시이다. 이 시의 이들 정서에 대해 ‘맑고 투명한 무구의 정서’, 곧 ‘순수의 정서’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이처럼 밝고 환한 정서, 건강한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의 한 특징이다. 

― 이은봉(시인, 광주대 문창과 교수) 해설 중에서



2. 저자소개


김 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해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9년 『시와시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가 있다. 



3. 도서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겨울 산에 들다


사월의 눈들

너덜겅 편지 1

겨울 산에 들다

봄, 소주

너덜겅 편지 2

겨울 무등산  

오월의 숲

너덜겅 편지 3

풍경

공룡능선 

봉정암에서 

찰나

구월, 그대


제2부 배고픈 다리 가는 길


봄똥

민들레꽃들

한겨울 오후

소주 한 잔

기다림

기침에 대한 명상

배고픈 다리 가는 길

욕망의 구름

봄 소태역

빈집

떠나가는 말들

병실에서

환자가 경전이다


제3부 여행


엘도라도의 밤 

삐비꽃에 대한 단상 

뻐꾸기 울음소리 들리는 개펄

북경일기 2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밤

와운 마을에서 

꼭이라는 말

여행

인라인스케이트 2

우실바다 펜션

우주의 소리

산수유꽃 봄을 부르다 

먹먹한 사랑 


제4부  여름 같은 봄이 온다


강이 운다

시인과 느티나무 

똥구멍 경전

진실은 불편한 것

발자국

죽음의 강

오월에 내리는 비

동서화합이라는 말

개나리가 손 흔드는 아침

여름 같은 봄이 온다

봄 강,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한 사람

추한민국의 사월

아득한 문장들


해설  반성하고 성찰하는 자아의 근심과 걱정 - 이은봉



**** 추천의 말


김완은 꿈꾸는 시인이다. 늘 우주의 소리를 듣기를 소망하여 마음을 모으기고 하고, 마음을 비우기도 하는 마음의 시인이다. 시간에 대한 사유를 그치지 않고 어디에 있던, 만나는 풍경들과 하나가 되어 소통하고자 하는 것도 우주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그의 불멸의 꿈 때문이다. 또 그는 광주의 시인이다. 광주의 5월 정신을 끝까지 기억해가고, 지켜나가고, 화엄 세상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는, 사랑과 평화의 의사 시인이다. 이 시집은 그의 삶의 성실함과 진실됨, 진정성이 그대로 드러난 시들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에게 감동을 느끼게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 나해철(시인)


김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온통 ‘산행’과 ‘여행’의 시들로 붐빈다. 물론 그의 산행과 여행은 단순히 건강 도모와 휴가를 위한 등산이나 관광이 아니거니와 마치 길 위의 인문 정신 궁리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모든 사물은 제 몸에 시간과 역사를 아로새긴다”는 그의 시구처럼 산행과 여행 중에 접하는 수많은 존재들 속에서 시와 철리를 건져 올리거나, 풍상에 울고 웃는 개개인간의 시간을 보고 이름 없는 백성들의 “늘 아픈 역사”를 사유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풍물 속에 마음을 내려놓거나 활짝 열어서는, 그 속에서 자연스레 펼쳐지는 가지가지 생태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인간의 도리와 삶의 희망을 단도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거대한 힘도 자연이 내는 묵음의 소리를 가둘 수는 없다”는 그의 단호한 발언처럼, 그의 산행과 여행의 궁극은 자연의 묵음과 그 속 어디서든 멈추지 않는 우주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구도행에 다름 아닌 걸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이는 “환자가 경전”이라는 의사 시인 김완의 아주 신실하고 웅숭깊은 매력이다.

― 고재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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