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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생각

[푸른생각] 송진섭, 『말숲산책』

by 푸른사상 2025. 8. 27.

분류-- 인문, 언어생활, 한국어

말숲산책

 

송진섭 지음푸른교양선140×205×15.5mm256

19,500ISBN 979-11-92149-61-5 03800 | 2025.5.22

 

 

■ 도서 소개

 

뜻을 잘 알고 쓰면 더욱 아름다운 말과 글

유래와 어원을 알면 더욱 재미있는 말과 글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쳐온 송진섭 작가의 말숲산책이 푸른생각의 푸른교양선으로 출간되었다.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말과 글이다. 저자는 말숲의 해설사가 되어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어휘나 관용구, 외래어나 신조어 등의 원래 의미와 유래를 콕콕 짚어주며 올바른 언어 생활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 저자 소개

 

송진섭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0여 년 고교 교사로 재직한 뒤 퇴직했다. 6, 7차 중고교 한문 교과서를 집필했고, 장편소설 냄비받침을 펴냈다.

 

 

■ 목차

 

산책을 시작하며

 

1부 사랑을 먹고 사는 말

001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 002 한국어, 하이브리드 언어 / 003 우리말의 상처 / 004 사랑을 먹고 사는 말 / 005 말과 사회 현실 / 006 우리말의 높임법 / 007 말도 씹는 시대 / 008 다수의 횡포 / 009 나는 병, 드는 병 / 010 낙타와 바늘귀 / 011 반딧불과 반딧불이 / 012 안무와 춤 / 013 결재와 결제 / 014 물샐틈없는 / 015 나루터와 나룻배 / 016 설레는 마음 / 017 긴가민가 / 018 흐지부지 / 019 감기와 고뿔 / 020 숟가락과 젓가락 / 021 시집가고, 장가들고 / 022 눈시울과 입술 / 023 시치미 떼기 / 024 갈등 / 025 낭패 / 026 완벽 / 027 백미 / 028 이판사판 / 029 야단법석 / 030 부질없는 일 / 031 우리들의 십팔번’ / 032 나무아미타불 / 033 자린고비 / 034 조바심 / 035 을씨년스러운 날 / 036 얼레리꼴레리 / 037 땡전 한 푼 / 038 쥐뿔도 모르면서 / 039 양치질 이야기 / 040 도무지 / 041 어지간하다 / 042 하마평 / 043 흥청망청 / 044 한국어의 단음절어 / 045 젬병 / 046 고약한 놈, 고얀 놈

 

2부 같아요, 같아요, 같아요

047 참나무의 이름표 / 048 금자탑 / 049 자문위원 / 050 아는 체하다, 알은체하다 / 051 주인공, 장본인 / 052 숙맥 / 053 김치 이야기 / 054 갑절과 곱절 / 055 거시기가 거시기해서 / 056 꺼벙한 꺼병이 / 057 이따가, 있다가 / 058 애끊는, 애끓는 / 059 가려움, 간지러움 / 060 행여나, 혹시나 / 061 아바타 이야기 / 062 며칠인가, 몇 일인가 / 063 잇달아, 잇따라 / 064 징크스 이야기 / 065 한가위만 같아라 / 066 같아요, 같아요, 같아요 / 067 카리스마 / 068 면허 이야기 / 069 우리 부인, 남의 부인 / 070 진저리와 넌더리 / 071 원숭이와 잔나비 / 072 백만 달러? 백만 불? / 073 금슬과 금실 / 074 왼손 이야기 / 075 신발과 족발 / 076 짝퉁 / 077 밥 이야기 / 078 어수룩한 사람 / 079 괴발개발 / 080 명태, 임연수어, 오징어 / 081 , , / 082 호프집에서 호프 한 잔 / 083 대박과 쪽박 / 084 육두문자 / 085 살과 끼 / 086 개개비 둥지의 뻐꾸기 알 / 087 껍질과 껍데기 / 088 미망인

 

3부 소인배는 있어도 대인배는 없다

089 우연히, 우연찮게 / 090 손절하다 / 091 어마무시하다 / 092 지라시 / 093 , 댕구알, 댕구알버섯 / 094 , 실밥, 톱밥, 대팻밥 / 095 임부, 산부, 임산부 / 096 혈압 재실게요 / 097 경신과 갱신 / 098 일절, 일체 / 099 건넌방, 건넛방 / 100 카타르시스 / 101 작열과 작렬 / 102 소인배? 대인배? / 103 플래카드, 현수막 / 104 꼬시다, 보듬다, 갈구다 / 105 삭월세와 사글세 / 106 옥수수와 강냉이 / 107 반지와 가락지 / 108 계시다, 있으시다 / 109 십 년 앞, 십 년 전 / 110 미장이와 빚쟁이 / 111 윗사람, 웃어른 / 112 사사하다, 사사를 받다 / 113 혈혈단신, 홀홀단신 / 114 아이는 앉히고, 쌀은 안치고 / 115 감쪽같이 속이기 / 116 의뭉한 사람, 음흉한 사람 / 117 프로와 퍼센트 / 118 우레와 우뢰 / 119 문짜와 문자 / 120 이 자리를 빌어 / 121 따위라는 동물 / 122 ‘밥맛과 식상 / 123 이런 오라질

 

4부 머리와 대가리

124 봄처녀 제 오시네 / 125 애먼 사람 잡네 / 126 밭이 한참갈이 / 127 얼룩빼기, 나이배기, 점박이 / 128 가을의 손짓 / 129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130 머리, 마리, 대가리 / 131 궁둥이, 엉덩이, 방둥이 / 132 꼬리, 꽁지, 꽁무니 / 133 휴대폰과 핸드폰 / 134 없데요, 없대요 / 135 문 잠궜어요? 잘 잠갔어요 / 136 우습다, 웃기다 / 137 부기, 붓기 / 138 , , , , / 139 소가지, 싸가지, 꼬라지 / 140 박이다, 박히다, 썩이다, 썩히다 / 141 동사무소,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 / 142 ‘나의 소원K-문화

 

산책을 마치며

 

 

 

■ '산책을 시작하며'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가 자신을 표현하거나 상대방을 이해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중요한 언어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그 중요성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공기나 물이 없이 살 수 없는데도 일상에서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언어의 소중함도 그렇게 잊고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언어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고 해서 그 소중함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긴 세월 우리말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말과 글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뒤적여가며 찾아보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전공자를 위한 글도, 학문적인 글도 아닙니다. 저와 비슷한 보통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쓴,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애착의 한 표현입니다.

언어는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닙니다. 풀이나 나무처럼 생명이 있어서, 새로 나기도 하고 자라기도 하며 죽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언어의 세계는 무한대의 숲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 역사유적지는 물론, 숲에 가도 대상을 쉽게 해설해주는 해설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의 숲에는 그런 해설사가 없습니다. 해설사가 없는 말숲에 감히 그 일을 해보고자 합니다.

거의 무한대로 넓은 말숲을 함께 산책하면서 흔히 잘못 알고 있는 나무, 우리가 이름을 모르고 있는 풀, 어떤 꽃의 특이한 유래 등을 마주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이 작은 노력이, 함께 산책하는 분들의 언어생활에 작은 재미나 도움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 출판사 리뷰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말과 글이다. 또한 한국인으로서 쉽게 읽고 쓰는 우리말, 우리글이지만 올바로 사용하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것이 또 우리 말글이다. 최근에는 정확한 맞춤법이나 어문규정은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의사소통만 되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도 퍼져 있다. 신조어나 줄임말이 남발되어 한글이 파괴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TV에 나오는 아이돌은 노래에 신경 쓰다 보면 안무를 틀리고, 안무에 집중하다 보면 노래를 틀린다고 말한다. ‘안무를 혼동하는 것이다. ‘설레다설레이다, ‘헤매다헤메이다로 틀리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부정적인 의미의 장본인을 긍정적인 문맥에 사용하고도 이상한 줄을 모른다. ‘우습다웃기다의 의미를 구별하여 쓰는 사람도 거의 없다. ‘손절하다어마무시하다같은 새로운 말이 언중 사이에 파고들어 곧 국어사전에도 등재될 분위기다.

언어가 사회적 약속이라지만, 잘못된 의미와 쓰임이 널리 퍼져서 이제는 바르게 쓰는 사람이 드물 지경이다. 그러나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사회의 성격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사회가 거칠어지면 언어도 거칠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르지 않고 혼란스럽다면, 우리의 심리와 생활 태도가 그만큼 혼란스럽다는 의미가 아닐까.,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쳐온 송진섭 작가는 언어의 세계를 무한한 숲에 비유하여 말숲이라 하고, 스스로 그 말숲의 해설사를 자처한다. 해설사의 설명과 안내에 따라 말숲을 산책하면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어휘나 관용구, 외래어나 신조어 등의 의미와 유래를 배우고 올바른 언어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

 

 

 

■ 책 속으로

 

요즘, ‘엄청이라는 말이 엄청나게쓰이고 있습니다. ‘안절부절이라는 말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쓰여서 뜻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절부절못하게합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대신 엄청, ‘안절부절못하다대신 안절부절이 더 많이 쓰이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틀린 말이던 것이 다수의 사랑에 의해 복수 표준어의 자리를 꿰차기에 이르렀습니다.

엉터리없다’, ‘주책없다등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결과, 다수가 소수를 지배한 결과, ‘없다라는 꼬리를 잘라버린 엉터리’, ‘주책등이 버젓이 복수 표준어가 되어 사전의 표제어로 딴살림을 차렸습니다.

말이란 어법이 먼저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언중의 선택이 우선이라는 사실, 바꾸어 말하면 어법은 다수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유행어나 신조어가 언젠가는 점잖은 우리말을 몽땅 밀어내고 표준말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 생각 없이 많이 쓰는 신조어나 잘못된 말투까지 표준말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7~28)

 

우리 사회는 점점 전문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그 사회를 관리, 운영하기 위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조직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자문기관, 자문위원을 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문(諮問)’이라는 말이 자주 잘못 쓰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다’, ‘자문을 구하다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 ()’ 둘 다 묻다의 뜻으로 자문하다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묻다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자문을 받다자문을 구하다대신 자문을 하다또는 의견을 묻다등으로 써야 맞고 이에 답하는 사람은 자문에 응하다’, ‘자문에 답하다등으로 써야 합니다. 자문위원은 자문에 응하는 사람’, ‘자문에 답하는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별 생각 없이 쓰는 우리말, 알고 보면 잘못 쓰는 예가 참 많습니다.(99)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한 점이 많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 자체가 그러한 것이 아니고 그 말을 사용하는 언어 대중이 그러하다는 뜻이 되겠는데, 언어 대중이 말을 왜 그렇게 사용하는지는 아무래도 알 수가 없기에 불가사의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예 중의 하나가 십 년 앞십 년 전입니다. 아시는 대로 고유어로는 가 대립적이고, 한자로는 ()’()’가 대립적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같은 뜻이고, ‘()’가 같은 뜻입니다.

()’이 같은 뜻이라면 십 년 앞십 년 전도 같은 뜻이어야겠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쓰입니다. ‘십 년 전은 과거를, ‘십 년 앞은 미래를 가리키니까요. 그런가 하면 십 년 뒤십 년 후는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언중이 그렇게 쓰니까 그런 것뿐입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이 엄연히 말이 되고 있는 현상, 그게 바로 말의 불가사의입니다.(199)

 

교통신호를 어기고 마구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어법을 어기고 아무렇게나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왠지 무척 관대합니다. 영어 철자를 잘못 쓰는 일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모국어를 틀리게 쓰는 일에 대해서는 태연자약합니다. 아마도 나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혼란스러워지면, 그리고 그게 극에 달하게 되면, 교통신호를 위반한 경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리는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신이 못된 인간에게 내리는 형벌이 언어의 혼란이었습니다. 언어의 혼란, 사이버 세상의 언어를 보면 이미 바벨탑의 비극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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