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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간도서

전해윤 시집, <세렝게티의 자비>

by 푸른사상 2024. 8. 19.

 

분류--문학()

 

세렝게티의 자비

 

전해윤 지음|푸른사상 시선 194|128×205×8mm|152쪽|12,000원

ISBN 979-11-308-2167-2 03810 | 2024.8.14

 

 

■ 시집 소개

 

인간의 본성과 존재에 대한 성찰을 노래한 시편들

 

전해윤 시인의 시집 『세렝게티의 자비』가 푸른사상 시선 194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현재의 세상은 물론이고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미래의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에 대한 성찰을 묵시록처럼 보여주는 시편들은 혼탁한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 시인 소개

 

전해윤

한국전쟁의 포연이 사라질 즈음 충청남도 금산의 한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동네에서 자라며 뜬구름 같은 희망을 키우다 대처로 나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30여 년을 설쳐대다가 어느 봄날 학교의 문을 나왔다. 퇴임 후 여전히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회의를 느끼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시를 만나 동행하는 중이다. 시집으로 『동행』 『염치, 없다』, 자전에세이로 『쓸쓸했던 기억들이 때로는』을 출간했다.

 

 

■ 목차

 

제1부

실없는 기도 / 소금 / 무신론 / 구도의 길 / 말씀의 부활 / 소박한 사랑 / 순정(純情)의 방패 / 아름다운 혁명 / 침묵의 이유 / 보이지 않는 벽 / 세렝게티의 자비 / 콘크리트 그늘 / 난청 / 원초적 부끄러움 / 이유 같지 않은 / 짝사랑

 

제2부

유구무언 / 어르신 / 근황 / 운명 / 파문(波紋) / 또 하나의 우상 / 뒤늦은 깨달음 / 불면증 / 어중간을 사랑하다 / 어지럼증 / 나이 고개 / 사라진 것들의 의미 / 또 하나의 계절 / ‘소나타’와의 동행 / 욕심에는 예의가 없다 / 허튼 맹세도 없이 / 기피 인물

 

제3부

우주 친구 / 인연의 꽃 / 백색 순명(順命) / 원초적 우상숭배 / 빛의 세례 / 꽃의 의지 1 / 꽃의 의지 2 / 날치의 꿈 / 낙지 전골 / 오픈 런 / 바람 무늬 / 그림자 / 태초의 씨앗 / 가벼운 세상 / 의리의 동반자 / 붉은 날

 

제4부

작은 소망 / 위로가 필요해 / 허망한 꽃 / 지지 않는 꽃 / 근심의 원인 / 욕망의 덫 / 거짓과 진실 / 녹두꽃, 다시 피어나다 / 휴전선의 노랑나비 / 4월, 참회 그리고 부활 / 묵시록 1 / 묵시록 2 / 묵시록 3 / 우리네 산하가 붉다, 살아온 세월이 붉다

 

작품 해설 : 작아지는 인간, 커가는 윤리-김효숙

 

 

■ '시인의 말' 중에서

 

나의 하루가 헐렁해질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늘 반듯하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사람이 온전한 존재인 줄 알았다

 

많은 오해 속에 살아온 지난날들의 의미를 모르겠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절실한 이유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안다

나 아닌 사람들, 사람 아닌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자 애쓰며 살아가려 한다

그 어려운 길을 가는데 ‘시’와 함께하려 한다

 

 

■ 추천의 글

 

전해윤 시인은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고요히 견디다가 뭇 꽃들이 피는 봄을 다 보내고 늦여름 무렵에야 꽃을 피우는 은목서 같은 시인이다. 스스로를 “바람이 불어도/나부끼지 않는 깃발”이라고 부르지만 “죽어서도 끝내/위로받지 못할” 시인이 되어 “잃어버린 내 그림자라도 찾아” “이 생을 견뎌”보자고 뚜벅뚜벅 걷고 있다. 그는 또 가슴을 두드리며 상처를 헤집고 다닌다. 녹두꽃 여린 꽃잎을 오래 바라보거나 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청맹과니들 앞에 통곡을 쏟는다. 자신의 시로는 용서를 청할 수 없는 참담한 세상을 “무릎 꿇고” “사방팔방에 사죄”하면서 “몹시 우울”한 “하느님”을 위로한다. 그의 시는 그렇게 사랑으로 회귀하는 지극하고 진솔한 고백의 비망록이다. 고요함이 지닌 커다란 울림을 시침 뚝 떼고 꺼내놓는 그는 삶을 의탁한 자신의 신 이외에 시라는 “또 하나의 우상”을 기꺼이 모시며 존재의 근원을 궁구한다. 전해윤 시의 지향점은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과거를 소환하여 미래의 자리로 함께 나가는 어울림의 세상이다. 그의 시가 “원두막 앞 토방에서” 작은 촛불로 타오르는 날을 믿고 기다리는 아름다운 기대를 적어둔다.

― 박미라(시인)

 

 

■ 작품 세계

  

『세렝게티의 자비』는 가벼움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인간’이기에 가능할 법한 생각 거리들을 안긴다. 사사로운 경험에 착안한 시들과 거시적 안목을 지닌 시들이 상호 교환하는 감수성과 현실 진단 의지는 결코 단선적이지가 않다. 시인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상황들로 유추해보건대 이 시집의 화자는 크게 세 개의 반경 ― 모성성, 신과 시인, 역사적 사건들 ― 안에서의 성찰적 주체다. 여기에 담긴 주제들이 그간에 우리가 당연시해온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특히 타자와 견주어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꾀하는 이기적 개인에게 이 같은 발화는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하는 힘을 지녔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뒤늦게 알게 된 삶의 이치와 인간관을 남다른 안목으로 녹여낸다. 「뒤늦은 깨달음」에서 들려주는 고백처럼 시인은 이전에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골몰했었다. 세상만사의 이치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모든 것을 당연시했으며, 과거를 돌아볼 때는 번번이 원망으로 얼룩진 일들이 먼저 떠오르곤 했다. 더구나 그의 피신처인 신앙마저 습관으로 굳어져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점철된 시간을 살아왔노라 고백한다. 여기에 더해 시 쓰는 일의 불가능성을 절감하면서 번번이 고역이고 절망인 글쓰기를 이어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 쓰기의 고역이 역설적으로 위안이 되었던 삶을 이야기한다. (중략)

전해윤 시인은 엄연히 이곳에 현전하는 인간을 사라져버렸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 기저에 부활 불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이 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해야 가능하지만 사라져버린 인간은 죽음 현상과 별개로 자취를 감춘 상태를 이른다. 부단히 사라지는 과정에 놓여 있어서 복원이 불가능하며, 부활은 온전히 죽음으로써만 가능한 일인 점을 성서에 쓰고 있기에 현대 인간은 부활을 꿈꿀 수 없는 사라짐의 주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림자·십자가의 은유로 인간의 부재를 말하면서 지금 여기에 현전하는 인간 형상을 성찰하는 이 시집을 읽기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신앙의 맹목성이나 종교 범주의 획일적 사고를 잠시 내려놓을 마음부터 먹는 일이다. 시인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의 면모를 바로 보고자 했으나 되레 눈이 멀어버린 점을 성찰하면서 다시금 자신의 인간관을 점검해 나간다.

― 김효숙(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세렝게티의 자비

 

세렝게티의 초원 한가운데

새끼 잃은 어미 하마의 시선이 지평선 너머에 머문다

그의 한숨은 분명 제 생보다도 길 것이다

 

생사가 출렁이는 세렝게티에서

사자의 이빨은 축복

기린의 목은 은총

가젤의 다리는 경이

약자의 비굴도 용기, 위태로운 삶을 지탱해주는

 

살아 있는 것들 위로 솔개처럼 죽음이 덮치고

붉은 주검들 주위에는 뭇 생명들이 넘실대는 세렝게티, 날마다

삶과 죽음이 화려하게 변주(變奏)된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글썽이는 눈망울

저녁노을은 오늘에 대한 뜨거운 위로

처연한 달빛은 내일을 향한 연민, 모든 생을 위로하는

 

세렝게티에서 죽음은 차라리 자비,

뭇 생명들을 살리는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우상

 

시라도 쓰지 않으면 내 생의 풍경은

수십 길 갱도지

눈 감은 가랑잎이 반듯한 길 찾는 모양새지

부서진 콘크리트 기둥을 붙들고

주님, 주님 하면서 애원하는 꼴이지

 

그런 길 가다가 시를 만난 거야

정처 없는 길을 어깨동무하며 가고 있지

깊은 갱도에 촛불 하나 밝혀보려 하는 거지

이정표 하나 세워보려 하는 거지

 

없는 답을 찾으러 시와 길을 떠난 거지

잃어버린 내 그림자라도 찾아볼까 하고

이유도 모르는 이 슬픔 위로해볼까 하고

시와 서툰 춤을 추는 거지

 

시의 리듬에 맞추려 애쓰고 있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를 섬기는 거지

부질없다는 것도 알지, 어쨌거나

그렇게라도 이 생을 견뎌보자는 거지

 

 

붉은 날

 

젊은 날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알지 못했어

백일홍을 보면 안쓰러웠지

 

붉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어

붉게 산다는 것의 무게를 몰랐지

 

이제는

십일홍이 참 대견하다 싶고

백일홍이 너무도 부럽지

 

처음부터 붉은 삶이 어디 있으랴

푸르른 날들도 쌓이고 쌓이면

어둠의 날들도 견디고 견디면

백설이 분분한 날에도

진홍빛 날들이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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