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한한 유일의 재산” 인간 박인환의 고백
박인환 학술연구총서 완간
수필·서간·체험기 41편 수록
종군 기자 기록·미국 여행기 등
고향 강원에 관한 글 실려 눈길
“욕심 없는 근성 배반할 수 없어”
오늘 인제 박인환문학축제 개막
“강원도의 모든 풍물은 고난과 질곡과 박해에 억눌린 우리 민족의 슬픈 표정을 간직한 것과 다름이 없었으며 이것은 즉 강원도만이 가질 수 있었던 최후적인 한국의 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맹문재 시인이 2019년부터 간행해 온 박인환 전집 시리즈의 마지막 권으로 ‘박인환 산문 전집’을 펴냈다. 인제 출신 박인환 시인의 수필, 한국전쟁의 체험, 미국 여행기, 서간, 전기, 설문 등 41편이 책에 수록됐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박인환의 경기공립중학교 학적부, 제적등본, 다수의 사진도 포함됐다. 박인환의 부인과 자녀가 남편과 아버지를 추모한 글도 실었다. 그간 푸른사상이 발간한 4권의 박인환 학술연구총서가 시인, 평론가, 기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박인환의 모습을 담았다면, 이번에 나온 산문 전집에서는 ‘인간 박인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박인환이 강원도에 대한 글을 남긴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끈다. 1954년 ‘신태양’에 수록한 ‘내 고장 자랑 강원도편’에서 시인은 “나는 한 번도 남들 앞에서 내 고향 자랑을 해본 일이 없다”며 “강원도는 순박하고 순수하고 그리고 인간의 정서를 말하는 곳 같다. 강원도의 산은 푸르고 강물이 맑고 달은 밝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원도에서는 출중한 인물이 나오지 못했다. 하나 그 벼슬과 같은 것이 무슨 소용 있으랴. 그저 남을 해지기 싫고 그렇다 하여 짧은 인생에 과분한 욕심이 없는 강원인의 근성을 나는 배반할 수 없다”고 글을 남겼다.
박인환의 수필 15편은 사랑에 관한 글이 주로 실려있다. 아내 이정숙 여사에게 보낸 서간에는 “돈이 없어 죽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돈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무한한 유일의 재산이며, 영원한 당신의 것이올시다”라고 썼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당시 썼던 전쟁 수기와 19일간의 미국 여행기도 있다. 서울의 모습에 대해 “자유가 사라진 죽음의 고장”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이름 모를 젊은 군인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라며 “살육과 체포, 납치는 서울 도처에서 벌어졌다”고 기억한다. 이 와중에 시인의 아내는 폭격 속에서 딸 세화를 낳았다. 세화는 ‘세상이 평화롭게 되었다’라는 의미다.
미국에 대한 인상을 담은 ‘몇가지의 노트’에서는 “아메리카는 야욕에 불탄 이단자의 나라다. 그들은 꺾지 못할 청춘의 힘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언론에 대한 소회를 담은 글 ‘미담이 있는 사회’에서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좋은 이야기를 보도해 줄 때 세상은, 아니 사람의 마음은 밝아지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명동의 댄디보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지식인의 고뇌도 느낄 수 있다. 유엔한국위원단 출입기자로 활동했던 박인환은 주한미대사 존 무초로부터 체포된 적도 있었다. 1949년 박인환 시인이 발표한 성명서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비롯한 좌익 계열”에서 재차 탈퇴함을 밝히며 “대한문국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서한다”고 기록돼 있다.
맹문재 시인은 “글자를 입력하고 전집 자료 발굴하는 데 있어서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당대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탄압 또한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는 박인환의 영화 평론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인환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지극한 사랑을 보였다. 그의 산문은 그 사랑이 얼마나 진실하고 열정적인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며 “돈이라는 괴물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는 시대에 그의 휴머니즘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인제군문화재단은 15∼17일 인제 박인환문학관에서 박인환문학축제를 연다. 박인환 학술세미나와 연극 ‘나는 보았다’, 전국박인환시낭송대회, 김영하 작가 초청강연 등을 갖는다.
강원도민일보, "“사랑은 무한한 유일의 재산” 인간 박인환의 고백", 김진형 기자, 2023.9.15
링크 :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203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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