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희 시인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찾아낸 희미한 빛]
조미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가 <푸른사상 시선 180>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가난을 외면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물질과 욕망이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시인은 인간 가치를 지향하는 의지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조미희 시인은 달이 파먹다 남긴 캄캄한 밤에 자신은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한다. 풍요로운 고층 빌딩의 그림자 속에 숨겨진 그들은 한여름이라도 추울 수밖에 없고 아픈 곳도 보여주기 싫어한다. 어둠의 옷을 더 편하게 여기고, 부러지지 않은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뿌리를 키우지 못한다. 시인은 그들의 가난을 외면하거나 자신의 가난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키워온 것이 가난이라고 당당하게 노래한다. 가난한 꽃과 가난한 낙엽과 가난한 근로계약서와 가난한 밥을 움켜쥐고 기적 같은 시를 쓰는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조미희 시인은 “예민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시대의 뒷문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존재를 돌본다(「사라지는 동네」). 이는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문명에서의 오지’의 감각을 내면화한 채 도시 변두리라는 존재의 거소를 살펴본 첫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감각은 “계단 끝까지 오르는 거친 숨결”로 “줄기가 휘어진 모퉁이”에서 “가난”을 경험해본 이의 상실의 체험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정박」,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 그와 같은 도시 빈민의 고단한 삶과 그 누추(陋醜)는 이번 시집으로 이어지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의 곁에서 시인은 “오래 앓다 보면 때론 아픔도 궁금해져 기다리기도” 한다면서 그 아픔의 “더 안쪽 어디쯤에서/집을 짓고 밭을 경작하고 있”는 삶의 양태를 다독인다(「내 이를 물고 간 새는」). 그리고 스스로를 ‘드림캐처’로 자리매김하며 “아무도 너의 꿈이 춤추는 걸 방해하지 않”(「드림캐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곁에 둔다.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어루만지며 존재로 하여금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비록 유년의 아름다운 순간은 상실했지만, 그때를 기억하며 존재의 현존을 위무하고 미래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소박한 옹호를 수행하는 의지. “하얀 눈길 같은 종이 위에”(「가난한 내가 가난한 시를 쓴다」) 쓰인 시는 시인의 마음과 의지로 충만하기에 ‘가난한 시’에 머물지 않는다. (중략)
조미희 시인의 시가 “가난한 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선량”을 찾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선량”은 선하고 어진 성품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옳음을 실천하는 능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가난을 존재의 실체값으로 만들어 삶을 고단하게 하여도 강제된 욕망에 복무하는 ‘우리’가 아닌 다양한, 지금 이곳의 현존을 포용하는 ‘우리’를 실천코자 하는 시인의 시는 결코 가난할 수가 없다. 마빈 하이퍼만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두고 “모순을 포용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동시에 가까워지고,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던 것처럼 조미희 시인의 시 역시 세계가 강제하는 모순 속에서 다양한 ‘우리’의 양태를 포용하고 그 거리를 조절하는 한편,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지금 이곳의 ‘우리’를 모색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그 길이 비록 달이 파먹다 남긴 밤처럼 캄캄할지라도 조미희 시인을 따라 여기까지 온 우리는 “가장 보편적인 사회” 너머 “선량”한 개인의 평범한 일상이 구축할 ‘우리’의 희미한 빛을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조미희 시인은 2023년 9월 16일 오후 6시에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홀에서 맹문재 시인의 사회로 출간 기념 북토크를 갖는다
조미희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2015년 『시인수첩』으로 등단한 뒤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를 출간했다. 2019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 두번째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를 간행한다.
내외신문, "조미희 시인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찾아낸 희미한 빛]", 강민숙 시인, 202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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