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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김경숙 소설, <걸똘마니들>

by 푸른사상 2023. 5. 26.

 

분류--문학(소설)

 

걸똘마니들

 

김경숙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47|146×210×14mm|264쪽

17,000원|ISBN 979-11-308-2050-7 03810 | 2023.5.26

 

 

■ 도서 소개

 

폭력과 희생, 가학과 인고, 핏빛 역사로 아로새겨진 1948년 4월의 제주

 

김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걸똘마니들』이 <푸른사상 소설선 47>로 출간되었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린되고 학살된 자들의 처절한 슬픔과 핏빛 역사가 잠들어 있는 제주의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이념의 폭력에 희생된 민중들의 수난과 아픔을 한 가족사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 작가 소개

 

김경숙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2015년 5·18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 『그녀들의 조선』(공저)가 있다.

 

 

■ 목차

 

흰 보자기

걸똘마니들

16년 후

불평도 자란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

그날

샛문

죽음의 섬

개집

뒤바뀐 쌍둥이 형제

슬픔으로 낳은 생명

 

▪작가의 말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을 쓰기 전, 그 바다에 갔었다. 파도는 험준한 산을 오르듯 치솟았다가 내리막을 달리듯 급물살을 탔다. 탄식을 사그라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격렬해 보였다. 파도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1948년에 일어난 제주 4·3항쟁을 배경으로 이념의 폭력에 희생된 민중들의 아픔을 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었다. 다시는 우리에게 이런 슬픔이 없길 바라며.

작가의 말을 쓰며, 쓰고 지우고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아마도 소설이 아닌 나이기에 그러하리라. 글을 쓰는 동안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은 젊고, 몸은 늙어간다. 뭔가 행복하다고도 느낀다. 아주 드물게.

 

 

■ 출판사 리뷰

 

국가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린되고 학살되었던 자들의 처절한 슬픔이 잠들어 있는 제주.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격렬한 이념 갈등으로 혼란에 빠졌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중들과 그들을 탄압하려는 경찰 및 서북청년단의 충돌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김경숙 작가는 폭력과 희생, 가학과 인고, 핏빛 역사로 얼룩졌던 제주의 그 날을 『걸똘마니들』에 불러낸다. 이 장편소설은 이념의 폭력에 희생된 민중들의 수난과 아픔을 한 가족사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동문시장 뒤편 산지천 다리 아래 움막에는 왕초인 광조를 비롯해 쌍둥이 형제인 해미와 남수, 등 굶주린 걸똘마니들이 살고 있다. 쌍둥이가 아홉 살 되던 해, 거부로 알려진 조 회장이 어쩌면 자신들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동문시장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를 찾아 목포로 향한다. 그곳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잘못된 권력에 반감을 느낀 해미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훗날 남로당 공작원이 되어 제주에서 무장대 활동에 가담한 해미, 법학과에 진학하다 해미를 돕기 위해 제주 군부대에 자원한 남수, 제주에서 재회한 걸똘마니들. 뒤바뀐 신분과 파괴된 가족. 각자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쌍둥이들을 따라가며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제주 섬의 비극적인 운명이 이 책에 펼쳐진다.

제주4·3사건에 휘말린 한 가족의 증오와 용서, 희생과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한국 현대사의 참혹한 현장을 기록한 비망록과도 같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국가 폭력에 대한 진실을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난사의 근원과 끝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 작품 속으로

 

“제주에는 기생충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들의 횡포를 좀 자세히 듣고 싶군요.”

편안한 분위기를 틈타 이명철이 화제를 바꾸었다. 해미는 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시작했다.

“지금 제주에는 서북청년단들이 반공이라는 광기로 무장해 내려와 있소. 5월 10일에 있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 활동을 지원하고 군정 실패로 인한 도민들의 불만을 누르기 위해 광기를 부리고 있소. 서북은 경찰의 권력을 등에 업고 죄 없는 민간인들을 끌어다 고문을 하고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소. 도민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소. 서북은…….”

가정이 있는 부녀자와 젊은 처녀들을 노리개로 삼고 있다고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패거리들에게 끌려가던 질레가 생각나서였다. (73쪽)

 

평화협상이 있은 지 5일째 되던 날 오라리 방화 사건이 터져 협상은 파기되고 말았다. 김익렬과 남수가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해본 결과 경찰과 우익청년단원의 소행임이 명백했지만, 경찰 측이 오라리 방화사건은 무장대 짓이라고 우겼다. 또한, 김익렬의 보고는 전부 거짓이며 공산당과 한패라고까지 모함했다. 김익렬은 분노했다. 선거를 앞둔 미 군정은 사태를 조기 진압하기 위해 잘잘못을 가리지도 않고 사건을 덮어버렸다. 게다가 최고 수뇌 회의를 통해 미국 딘 장군이 강경 진압 토벌 작전으로 방침을 선포해버렸다. 다음 날 김익렬은 해임되고 박진경 중령이 후임에 앉았다. 연대장이 된 박진경은 취임하자마자 무고한 도민까지 희생시켜가며 중산간 마을을 악랄하게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144쪽)

 

조선은 해방됐어. 우리는 나라를 되찾은 거라고. 난 되찾은 나라를 식민 교육 노예들에게 맡길 수 없어. 지금 섬에는 식민 교육 노예들이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하고 있어. 노부유키가 한 말처럼 되고 있다고. 노부유키의 말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말인지 나는 이곳에서 실감하고 있어. 헐뜯고, 음모하고, 누명 씌우고, 죽이고 있다고…….

형! 날 설득하려 하지 마. 형은 언제나 그랬지. 할머니가 우리 때문에, 아니, 나 때문에 경찰서에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을 때도 형은 지금처럼 말했어. 이럴 때일수록 법을 지키자고,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하자고. 형! 법은 희망이 없어. 약자의 편이 아니니까. 죄인을 잡아야 할 경찰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죽이고 있으니까. 형! 비록 나를 버린 고향이지만 내 고향이 피로 물들고 있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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