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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에 /한영옥
네 얼굴에 먹구름 흘러가기를
순하게 기다리는 동안에
네 얼굴이 말갛게 드러나기를
천천히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것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때를 놓친 것은 아니다
지나갈 것들 지나갔을 뿐이다
잡아뒀으면 까마중 열매라도 됐을까
네 참 얼굴을 기다리는 동안에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출처- 시와시 <2012년 겨울호>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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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순 시인 |
어린 시절 시냇가에서 샘을 파보면 흙탕물이 흘러나온다. 나중엔 모래들이 걸쭉하게 흘러나온다. 그러나 파던 손을 멈추고 잠시
앉아있으면 흘러갈 것들은 다 흘러가고 맑은 조약돌 반짝이는 작은 시내가 또 하나 생긴다. 그 물에 손을 씻고, 얼굴을 씻고, 한
모금 떠 마시고 그리고도 아까워 차마 두고 돌아서지 못했던 기억, ‘지나갈 것들 지나갔을 뿐이다.’ 그것은 기다려 본 사람의
말이다. 보낼 것은 보내고 잊을 것은 잊어본 사람의 말이다. 삶을 통틀어 재단해본 사람의 말이다. ‘아무 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단언할 수 있는 시인의 성숙함을 까마득히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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