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쓴 광부의 생애…검은 울음을 토해내다
성희직 시집 ‘광부의 하늘이…’
처절한 탄광노동 투쟁의 기록
실명 그대로 싣는 르포 시 형태
광부·진폐 환자 삶 사실적 표현
탄광 문학 가치 속 아픔 되새겨
28, 44, 229, 223, 222, 201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피를 나눈 아들 형제 아버지이고
또 누군가에겐 따스한 체온으로 각인된
정겹고 사랑하는 남편이었을 사람들이다
-성희직,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 1’ 중
위 시의 첫줄에 나온 숫자들은 탄광사고 희생자들의 목숨이다. 28명은 1979년 4월 14일 정선군 함백광업소 화약폭발 사고 희생자. 33명은 10월 27일 문경시 은성광업소 갱내 화재 희생자 숫자다. 이 사실은 시의 뒷부분에 그대로 서술돼 있다.
성희직 시인의 세번째 시집 ‘광부의 하늘이 무너졌다’가 최근 출간됐다. 처절한 막장노동 현실 속 투쟁의 기록이자 희생된 광부들의 영전에 바치는 노래들이다.
시집에는 숫자들이 유난히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성 시인은 “온몸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은 광부들의 피땀 흘린 노동 역사와 진폐재해자 투쟁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희직 시인은 왼쪽 검지와 중지를 스스로 잘랐다. 모두 광부들을 위한 투쟁이었다. 1986년 정선 삼척탄좌에서 광부로 석탄을 캔 그는 3년 후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첫 단지를 했고, 2007년 진폐증을 위해 싸우다 31일의 단식투쟁 끝에 두번째 단지를 했다.
지금까지도 정선진폐상담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가 써내려간 시들은 탄광촌 광부와 진폐 환자들의 처절한 현실을 알리는 ‘신문고’다. ‘산업전사’로 존경받기 전에 ‘진폐재해자’가 되어 또다시 투쟁에 나서야 했던 광부들의 투쟁일지다.
성 시인이 싸우며 흘린 피가 시집 페이지마다 스며들어 있다. 희생된 광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거나, 막장 속 지옥도를 생생하게 그리며 읽는 이를 강원도 탄광 속으로, 고통받는 그들의 삶과 폐 속으로 데려 간다.
‘진짜 광부 오흥균 이야기’, ‘불굴의 여전사 이무희를 말한다’ 등 함께 투쟁한 동료들의 실명을 시 제목에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고, 희생되었거나 혼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의 이름과 사연도 곳곳에 실었다.
‘광부의 목숨값은 얼마인가’라는 시의 부제는 ‘신문에 안 난 이야기’다.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부 매몰 사건의 막전막후가 그대로 담겼다. “입이 마르고 타들어 갈 때는/ 소나무 갱목 껍질을 벗겨 목을 축이고/(중략)/ 동료들 부축받아 저승입구 같은 갱구를 나오자/ 서로 좋은 사진 찍겠다며 /(중략)/ 구조된 광부들 모두 병원으로 옮기고 나자/북새통이던 상황실엔 사람들 모두 떠나고/광부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석탄을 캤다.”
시 전문 자체가 르포 기사로 보인다.
4부에서는 1970년 흥국탄광 이야기를 서술한다. 매몰 사고 당시 탄광을 관리했던 기획과장이 40여시간을 갇혀있던 광부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와 그가 남긴 자필 메모로 구성했다. 광부 뿐 아니라 탄광 경영진도 수십년간 쇳덩이를 가슴 위에 얹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막’형식으로 서술해서 극화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외에 시집에는 통일에 대한 열망과 아내에 대한 사랑, 전태일 열사에 대한 존경 등도 담겨 있다.
정연수 시인은 해설에서 “광부들을 위로하는 문학은 탄광노조에서조차 나오지 못했다. 광부의 마음을 읽을 문학 정신은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극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어간 광부들의 피땀 어린 노동의 역사서이자 탄광촌 민중들의 투쟁 기록”이라고 했다.
성 시인은 1991년 도의원에 당선된 이후 3선을 하며 부의장까지 지냈다. 해고 광부를 강원도의원으로 만들어준 주민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신장 기증도 했다. 재가진폐환자생존권 투쟁위원장을 맡아 전국 1만2000여명의 재가 진폐환자들의 진폐기초연금을 받게 만든 장본인이다.
성 시인은 “크고 작은 광산 노동자들께 술 한잔 올리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바친다”고 밝혔다.출판기념회는 내달 7일 정선 사북읍 종합복지관과 내달말 서울 교보문고에서 열린다.
강원도민일보, "피로 쓴 광부의 생애…검은 울음을 토해내다", 김여진 기자, 2022.9.30
링크 :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47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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