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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정대호 시집, <가끔은 길이 없어도 가야 할 때가 있다>

by 푸른사상 2020. 6. 11.

 

 

분류--문학(시)

 

가끔은 길이 없어도 가야 할 때가 있다

 

정대호 지음푸른사상 시선 126128×205×11 mm1849,500

ISBN 979-11-308-1682-1 03810 | 2020.6.17

 

 

■ 도서 소개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적 삶의 기록

 

정대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가끔은 길이 없어도 가야 할 때가 있다<푸른사상 시선 126>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이 유신 말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곡절 깊은 시대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시인은 폭력적인 국가 권력을 폭로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했던 시대인들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 시인 소개

 

정대호(鄭大鎬)

1958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 시절 복현문우회에 나간 것이 계기가 되어 글쓰기를 시작했고, 고대사를 전공하려다가 현대문학으로 바꾸었다. 몸담았던 복현독서회는 2학년 때 강제 해산 당했다. 1984분단시대동인으로 시를 발표했다. 1985년 첫 시집 다시 봄을 위하여를 복학 기념으로 낸 뒤 겨울 산을 오르며』 『지상의 아름다운 사랑』 『어둠의 축복』 『마네킹도 옷을 갈아입는다를 간행했다. 평론집으로 작가의식과 현실』 『세계화 시대의 지역문학』 『현실의 눈, 작가의 눈, 산문집으로 원이의 하루가 있다. (E-mail : sarammunhak@hanmail.net)

 

 

■ 목차

 

시인의 말

 

1

산나물을 하러 갔다가 / 앵두를 땄습니다 / 산꽃 / 청송 꿀 사과 / 외로움 / 가을 낮잠 / 고추잠자리 / 가을 시냇가를 걷다가 / 별리 / 그믐밤 / 공든 탑 / 겨울 배추 / 벼랑의 담쟁이 / 매화꽃 / 황혼의 바닷가 / 산다는 것은 상처다 / 야박하다 / 아름답다는 것은

 

2

이제 그만 집에 가자 / 영천 양반 / 달 밝은 여름밤 삼대가 나눈 대화 / 우리 집 머슴 정 노인 이야기 / 삼모댁 / 정만섭 / 잇비장수

 

3

서산 위의 보름달 / 고문 / 구슬봉이 / 아서원 / 닭장차를 타고 세상 구경 나섰다가 / 고문을 이기는 법 / 고문의 기술 / 권투 중계를 보다가 / 1978112일 낮 12/ 1978117/ 청도식당 / 포장마차 이판사판 / 곡주사(哭呪士) / 내 인생은 블랙리스트였다 / 짐승의 시간

 

4

폭풍의 시월 전야 / 경산 코발트 광산 유해를 보고 / 해방은 조국을 피로 물들였다 / 엄마에게 아이는 /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 백비(白碑)를 세우며 / 가창골 위령제를 보며 / 194610월 그날 우리들은 세우고 싶었다 / 화가 이광달 씨의 어느 날 / 아일란 쿠르디 / 장작불

 

작품 해설기록, 그리고 외로움 신재기

 

 

■ 시인의 말

 

우리들이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도 어떤 형식으로든 문자로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릴 때 고향 마을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조금 정리해보았다. 그때는 그러한 것들이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상이었던 것인데, 지금 보면 우리에게도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러운 것 같다. 또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걸쳐 대학을 다녔던 내가 겪은 이야기도 일부 정리해보았다. 특수한 이야기가 아닌 흔히 있었던 이야기들이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4부는 대구 시월항쟁과 관련된 시편들이다. 시월문학제 위원장을 맡아오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하지 못해서 늘 미안했다. 그 미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쓴 것들을 조금 정리해보았다. 이번 시집은 한 시대의 이야기들을 문자로 기록해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때로는 거칠고 투박한 표현이라도 그대로 두었다. 지나간 한 시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데에는 감정이 정제되지 않아서 힘들었다.

 

 

■ 작품 세계

  

정대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번 시집은 한 시대의 이야기들을 문자로 기록해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한 시대의 기록이기에 거칠고 투박한 표현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시대의 기록이란 점을 앞세운다. ‘기록에 무게를 두다 보니 언어 표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덧붙인다. 이는 독자에게 이 시집을 시적 표현보다는 기록이란 점에 무게를 두고 읽어달라는 부탁이 아니겠는가.

시인의 이 발언은 시집 전체 중에서, 특히 2부와 3부에 수록된 시편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4부의 시편도 무관하지 않다. 모두 기록성 강한 작품을 하나의 묶음으로 모아놓고 있다. 2부에서 시인은 다른 인물의 경험을 관찰자로서 기록한다면, 3부에서 시인은 기록자이면서 경험의 주체다. 2부가 3인칭 시점이라면 3부는 1인칭 시점이다. 2부의 기록이 시인의 이성에 의해 구성되었다면, 3부의 기록은 시적 화자의 즉물적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 3부의 시편이 독자에게 더욱더 생생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부는 시인이 학부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기록한 시편이다. 자신의 이야기이기에 증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중략)

화자는 넉넉하고 투명하고 자유로운 가을 시냇물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흐르는 시냇물이 드러내는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마음으로,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는 화자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정대호 시인은 제3부에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자기 경험을 기록하면서 정부 권력의 폭력성이 난무했던 당시를 짐승의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가해자를 짐승으로 몰고 가면 피해자인 주체는 모든 책임으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40년이란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그 시간을 소환하는 지점에는 짐승과 같은 폭력도 있었지만, 자신의 부끄러움도 곳곳에 배어 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그의 시가 기록을 통해 분노와 비판의 역사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도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반성을 통해 통렬한 자기비판이 더 크게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이란 시어에서 이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자기반성과 성찰은 자기를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거기에는 미숙하고 텅 빈 자아가 덩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언어를 쏟아 부었으나 여전히 그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시인에게 엄습한 외로움이다. 그것을 외롭다 직설하면 어린 양이 되고 말 일이니, 자연이란 존재를 끌어들인 것이 아니겠는가.

신재기(경일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이것은 부끄러움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청송 산골의 소심한 촌놈이 어떻게 역사에 동참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고백록이다. 눈물과 분노와 회한으로 얼룩진 이 일기장은 이제 시인 정대호의 개인사가 아니라 해방 이후의 곡절 많은 현대사를 블랙리스트의 족쇄에 묶여 살아온 모든 이들의 아픔을 증언하는 역사기록으로 읽힌다.

캄캄한 밤이다/앞이 보이지 않는 밤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걸어야 하는 길이 있다/길이 없어도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죽음이/저 앞에 보여도 서 있어야 할 때가 있다”(폭풍의 시월 전야부분)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헤치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시인은 외롭지만 당당하다.

정지창(문학평론가

 

 

■ 시집 속으로

 

황혼의 바닷가

 

마음이 허전한 날은

바닷가를 서성거려볼 일이다.

 

바람은 왜 이리도 텅 비어 있을까.

파도 소리는 왜 외롭다고 말할까.

아직 걸어야 할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오래 침묵으로 서 있어볼 일이다.

 

저 해는 마지막 불을 태우며

서산에서 서성거리고 있구나.

저 붉은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검은 밤이 찾아오겠지.

 

서쪽 하늘에 불타는

해를 바라보며

아직 내가

누군가에게

약속할 일이 남아 있을까.

 

조금은 생각해볼 일이다.

 

 

폭풍의 시월 전야

1946년 시월항쟁에 부쳐

 

캄캄한 밤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밤이다.

그래도 걸어가야 한다.

어둠 너머

어둠이 저만치 펼쳐 있다.

눈을 감으면

피에 의한 또 다른 피가

강물처럼 흐른다.

그 강물을 건너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걸어야 하는 길이 있다.

길이 없어도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죽음이

저 앞에 보여도 서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운명처럼

그 길 위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비(白碑)를 세우며

 

사각 나무에 흰색을 칠하고

원혼비(冤魂碑) 세 글자를 쓰고

가창골 길가에

상원동 길가에

정성껏 세웠습니다.

 

19506·25전쟁이 나고

가창골은 댐 아래위

모두가 학살터였습니다.

트럭에 실려와

구덩이를 파고

총살당하고 그 속에 묻혔습니다.

한 대도 아니고 두 대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차는 이어지고 날짜도 지나갔습니다.

 

대한중석 광산이 있던 상원리 계곡

19536·25전쟁이 끝날 무렵

계곡을 따라 서로 마주 보게 사람들을 포승줄로 묶어두고

뒤에서 총질을 했습니다.

죽임을 당하던 사람들은

죽음 앞에 당당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는지 모릅니다.

골짜기에 시체가 쌓이고 쌓였습니다.

죽음을 확인한다고 여기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습니다.

시체 더미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뭇 경찰들의 총알받이가 되었습니다.

 

대한중석 초소 경비를 섰던 한 젊은이가

맞은편 초소 위에서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죽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냄새에 진저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보름을 넘게 앓아누웠습니다.

 

65년도 더 지난 오늘 백비를 세우는 날

그는 노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이 산 위에 올라와 그날의 참상을 증언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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