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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안치운 학술총서, <연극비평의 미래>

by 푸른사상 2020. 4. 7.


분류--연극, 비평, 공연예술

연극비평의 미래

안치운 지음푸른사상 학술총서 51160×232×23 mm(하드커버)391

32,000ISBN 979-11-308-1649-4 93680 | 2020.3.31



■ 도서 소개

 

몸의 예술, 한국 연극의 오늘과 미래

 

안치운 호서대 연극학과 교수의 연극비평의 미래<푸른사상 학술총서 51>로 출간되었다. 삶을 살고 삶을 짓는 도구로서 연극예술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21세기에 들어 연극의 상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몸의 예술인 연극의 어제와 오늘을 직시하며 연극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한다. 연극의 존재와 배우의 역할은 무엇이고, 무대와 극장과 연극의 언어는 어떻게 실현되며, 연극의 동향과 산업으로서의 연극은 어디쯤 와 있는가 등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담아내고 있다



■ 저자 소개

 

안치운(安致雲)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정부장학생 시험에 합격한 뒤 국립 파리 제3대학(누벨소르본대학) 연극연구원(Institut d’études théârales)에서 연극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연극과 기억』 『공연예술과 실제비평』 『연극제도와 연극읽기』 『한국연극의 지형학』 『연극, 반연극, 비연극』 『옛길』 『시냇물에 책이 있다』 『연극교육제도론』 『추송웅 연구』 『연극, 기억의 현상학』 『연극, 몸과 언어의 시학』 『집과 길과 사람 사이등이 있으며, 역서로 한국 사람들희곡과 공연』 『종이로 만든 배: 연극인류학등이 있다. PAF 공연예술 비평상, 여석기 연극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파리 3대학과 브장송대학 초빙교수, 교수신문편집기획위원, 삼성문학상, 대산문학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연극학회 회장, 국제대학연극학회 이사로 있다. 현재 호서대학교 예술학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mail : ahn2960@naver.com)

 

 

■ 목차

 

책머리에 : 오늘의 배우와 연극 그리고 비평

 

1부 연극의 본질과 시선

좋은 삶, 좋은 연극

연극, 축제, 경제

관객이란, 연극의 언어

연극은 몸의 예술

공연과 공간현실과 허구, 그 이중적인 공간

젊음, 꽃과 같은 연극

연극과 철학몸의 풍경

연극과 축제

연극이란 도구

극장곳과 터, 개인의 부활에 대하여

연극과 춤의 만남

연극과 죽음

, 삶의 눈

다시 연극으로

연극과 여름 밤

막과 장 혹은 길과 산에 대하여

 

2부 연극과 결핍

거리극의 매력

연극이 역사를 말한다

연극과 기억

연극과 전쟁

876월 항쟁 20년과 우리-연극

옷에 대하여

 

3부 사람, 그리고 작품의 경험

현대 희곡에 나타난 기억의 양상

웃음과 쓴웃음희곡작가 고 이근삼 선생을 기리며

다시 읽어야 할 희곡

녹천에 사람이, 집이, 연극이 있다<녹천에는 똥이 많다>에 부치는 글

기국서와 한국 연극<찬란한 오후>의 연극성

윤영선 선생에 대하여

작품과 작가의 권리

이옥과 연극

어제도 오늘도 읽는 갈매기

한국 연극, 한국의 현대 희곡<황색여관>을 중심으로

마르셀 마르소의 마임

나초 두아토의 춤과 음악

낭만, 인형과 겨울 그리고 춤

극단 76<지피족>에 대한 단상

이강백 연극제에 대하여

공모와 빗장극단 골목길의 배우들

희곡 읽는 비평가의 아침

다리로서의 연극비평1PAF 비평상(1996) 수상 소감

1회 여석기 연극평론가상(1997)을 받으며

 

4부 한국 연극에 대한 해석

한국 연극과 한국연극

뮤지컬에 대하여

노래와 악극에 대하여

가능한 연극에 대하여

공연 읽기와 글쓰기

공연예술 산업의 발전방안

지원과 수혜, 시상과 수상, 의무와 윤리

창작극 개발과 육성을 위한 공연 레퍼토리 수립중장기 공연계획 수립을 위한 방안

한국 연극의 고전

연극 살아남기

연극열전에 대하여

한국 연극의 동향

방송과 연극

한 시대 한국 연극 공연의 모습

 

찾아보기

 


■ 출판사 리뷰

 

연극은 하나의 예술이기에 앞서 삶의 도구와 같다. 삶을 살고 삶을 짓는 도구로서 연극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저자는 연극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그리며 연극의 본질에 관해 탐구한다. 연극의 존재와 배우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대와 극장, 연극의 언어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리고 현재 연극의 동향과 산업으로서의 연극은 어디쯤 와 있는가. 창작되는 연극과 그에 대한 비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저자는 실천 연극과, 무용, 마임 등 비롯한 다양한 공연예술을 살피며 우리 삶과 마주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연극에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비평을 가한다.

연극은 희곡과 배우 그리고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예술로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긴 호흡을 유지한다. 배우가 전달하는 연극에서의 말은 관객들에게 절대적으로 들어가 무대를 장악한다. 공공연히 말과 글이 연극의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달리 한국 연극은 몸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춤과 연극에 있어 고유하고 독창적인 표현 기제는 몸이다. 손짓과 움직임, 몸 자체가 즉물적 언어로 관객에게 보이고 말을 하여 몸이 언어가 되는 셈이다.

또한 저자는 국내의 연극제들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관객 없는 텅 빈 극장과 고정된 틀, 주제나 표현의 새로움을 찾을 수 없는 작품들. 신자유주의로 인해 몰락해 가는 연극예술의 회생을 위해서 새로운 가능성, 변모하는 모습들로 하여금 폭넓은 연극을 공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극이나 희곡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도래하였다.

 


■ 책 속으로

  

삶은 불안한 마음처럼 언제나 방황이었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연극일 듯하다. 타락한 현실 영역에서 순수한 삶의 일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극장 속 연극이기 때문이다. 긴 현실에서 한두 시간 공연하는 덧없는 연극은 희망과 같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추송웅 연구를 쓸 때도 그러했다. 연극이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정성을 다한 연극은 현실의 혼돈을 규명하고, 조화롭게 만들려는 인간적인 시도라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현실 사회의 순수한 가치들을 부정하고, 예술가들을 타락시킨 지난 세월 속에서, 배우에게 극장과 연극은 삶의 망명지와 같았으리라. 그런데도 현실은 결코 배우의 삶을 품위 있게 만들지 못하고, 배우의 삶을 품위로 귀환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내 삶의 결론이다. 하지만, 삶과 품위와의 소통을, 삶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있다면 연극을 포함한 예술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좋은 연극, 구체적 연극은 삶의 좌절과 반성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연극은 삶 속에 놓여있는 쓸쓸한 비탈길이다. 연극은 여기서부터 삶을 순례한다. (19~20)

 

연극의 들숨과 날숨은 배우의 몸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관객은 배우의 숨소리를 듣는다. 길게 혹은 짧게 울리는 배우의 숨소리는 극장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숨소리는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이된다. 그런 면에서 배우와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몸의 존재이다. 메를로 퐁티식으로 말하면, 인간의 몸이 이 세계의 축()인 것처럼 일차적으로 배우의 몸은 연극의 축이다. 축인 몸은 이 세계에서나 연극에서나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몸이 부재하면 연극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관객에게도 적용되는 언급이다. 배우의 몸, 관객의 몸이 부재하면 연극은 존재할 수가 없다. 배우의 몸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좌우, 상하로 움직여야만 연극은 기계처럼 숨쉬기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연극은 비교적 배우의 몸의 좌우 경계를, 춤은 몸의 상하 경계를 넘나들고 확대하려 한다. 춤은 상승하고 추락하는 몸의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에 존재한다. 오르기 위하여 떨어져야 하고, 추락하기 위해서 다시 상승해야 한다. 그 숨바꼭질 같은 몸의 상승과 추락이 율동이다. 춤은 가장 높이 오르고 가장 낮게 떨어지려 하는 수직과 상승의 예술이다. 위로 올라가려는 열망보다는 밑으로 떨어지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절망이 더 큰 예술이다. 반면에 연극은 몸의 좌우, 그 방향에 조건 지어진다. 좌우의 연극에서 몸은 높이보다 자신의 주변과 관계 맺어진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에서 연극은 배우의 몸을 빌려 오르지 않고 좌우 옆으로, 앞뒤 길이로 관계망을 펼쳐간다. 여기서 배우의 몸은 사방으로 찢기고 힘의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한다. (54~55)

 

연극은 우리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매우 소중한 예술이다. 한국 연극에 있어서 고유한 배우의 이론이 있는가? 잊혀지지 않을 고전들은 얼마나 자주 공연되는가? 한국 연극의 미학에 관한 논의는 우리의 삶을 배경으로 삼은 연극의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연극은 섬세한 감각의 예술이다. 그것은 배우가 지닌 온몸과 숱한 말로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통찰하는 예술이다. 보이는 말이 글이고, 들리는 글이 말인 셈이다. 그 말과 글 속에 진리가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예사말과 글이 아니다. 연극이 모든 인문학적 지식을 총괄하고 지성의 산물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오래전부터 인문학의 위기와 더불어 연극의 위기를 말하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인간과 사회를 통찰하는 배우가 제 몫을 하지 못하면서 연극이 삶의 총체성과 멀어진 탓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커져 연극이 인문학적 지식과 지성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제 역할이 흔들리거나, 제 할 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연극이 재미없다는 것은 연극이 우리의 삶에 대하여 어떠한 설득력도, 통찰력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연극의 상투성, 통속성은 모두 고정된 것에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함으로부터 온다.

한국 현대 연극의 미학을 결정짓는 고유한 언어란 지배론적인 전제들인 모든 상투성과 통속성을 덜어낸 언어일 터이다. 그런 뜻에서 보면, 한국 연극의 중심인 대학로는 더 이상 연극의 마을이 아니다. 계속 똑같은 말로 하는 연극, 늘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연극들이 있을 뿐이다. 연극이 없는 텅 빈 사막과 같은 그곳에 있는 공연들은 연극의 탈을 쓴 유사 연극이다. 사유가 부재한 오락의 연극만이 풍요롭다. 그곳에서 새로운 연극의 역사를 만드는 작가를 찾기 어렵다. 이른바 가짜 연극들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위로 사라진 연극들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순결과 같은 연극 창작의 의지가 사라지고 연극을 지배하는 권력만이 난무한다. 여기에 연극비평마저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절박한 연극이론과 비평은 배회하고 있는 연극 유령들과의 대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 연극의 미학, 그 구경(究竟)은 존재하는 연극이 아니라 부재하는 연극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34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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