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를 노동자 시인이라 부른다 |
시인 정세훈 산문집 ‘파지에 시를 쓰다’ 출간 시인 정세훈(사진)이 산문집 ‘파지에 시를 쓰다’<푸른사상 산문선 25>를 출간해 주목받고 있다. 산문집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시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은 시인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스스로 ‘실패’와 ‘패배’를 말하지만 그의 삶과 문학이 누구보다 치열했음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연히 읽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접하고 처음으로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홍성 소년’ 시인의 노동과 문학의 역정을 담겨 있다. 그는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진학도 포기한 채 돈을 벌어야겠다고 작정하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전한다. 잘 곳이 없어 대형 냉동고나 가마솥에 숨어 지내야 했다. 어렵사리 영세 에나멜 동선 제조업체에서 자리를 잡았으나 석면과 독한 화공약품 등에 노출된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건강을 잃는다.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한 대가로 얻은 것은 직업병뿐이다.
그러나 그는 문학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공장 작업장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파지에 시를 썼다. 세상은 그를 노동자 시인이라 부른다. 시를 통해 그는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사이의 연대를 강조한다.
정세훈 시인은 자신을 ‘실패한 노동’이라고 규정한다. 그 스스로는 자신의 인생과 문학을 성찰하며 그렇게 규정할 수 있겠지만, 노동과 노동자의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온 그의 삶을 그 누가 감히 실패라 할 수 있을까.
박형준 문학평론가는 산문집에 대해 “실패는 아프다. 그것은 자기 생의 내력을 온통 부정하는 행위이자, 부조리한 사회의 변혁 가능성을 유예하는 인정 형식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시를 스스로 ‘실패의 역사’로 규정하는 것은 그래서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세훈 시인은 자신의 인생과 문학을 ‘실패한 노동’의 연대기로 규정한다.그러나 실패의 자인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투쟁 결과에 대한 반성과 책임일 뿐, 노동(자)의 가치를 위해 온몸을 바쳐 싸워온 시인의 분투 과정과 삶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도량이 아니다. 그는 충남 홍성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본의 축적 공간인 서울과 부산을 거쳐 인천의 부평공단에서 평생을 보낸 노동자/시인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정초하기 위해 공장 파지에 꾹꾹 눌러 쓴 시어는 노동자의 계급적 목소리를 발화하는 미적 사보타주인 동시에, 정규화 된 노동조합이나 계급적 거처를 갖지 못한 프레카리아트를 감각하는 심미적 통각이다”며 “시인은 자본의 생존 논리나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언어로 환수되지 못하는 노동/문학의 틈새까지 감지하고 기록함으로써, 노동 혐오를 조장하는 지배 질서의 통치 헤게모니에 파열음을 내며, 모든 인간을 생명의 대지 위에 안착시키고자 투쟁해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저 실존의 아카이브는 가난과 상처 그리고 병마로 얼룩진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 언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권리 장전’과 다르지 않다. 4차 산업 혁명과 노동의 종언이 강조될수록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으니,그것이 바로 인간/노동의 존엄이다. 정세훈의 『파지에 시를 쓰다』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었던 ‘홍성 소년’의 무력한 패배 과정을 통해 노동/사람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사유하게 한다”고 평했다.
정세훈 시인은 출간과 관련 “17세. 너무 이른 나이에 육체노동자가 되어 노동을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노동자를 알게 되었고 노동을 알게 되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을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노동은 자본의 노예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았다. 이러한 노동판이 문학을 하도록, 나를 이끌었다”며 “공정하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하고 공의롭지 못한 그 노동판에서 어린 노동(자)는 너무 일찍 병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미처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자본의 병이 급습했다. 자본에 피를 팔고 뼈를 팔아 피골이 상접해 쓰러져도 한순간쯤은 성공하고 싶었다. 어린 노동(자)이었던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65세가 되었다. 그동안 살아온 것이 아니라 혹독한 자본에 맞서 견디어왔다. 견디어온 삶이기에 어느 한때 어느 시기를 살펴보아도 제대로 내세울 만한 성공한 삶이 한순간도 없다.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결과가 이를 막고 있다. 실패한 노동! 그 삶들을 호명해 기록한다”고 밝혔다.
또한 “유소년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자전적 산문에 관련 시 한편을 배치한 이 산문집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내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면서 나 자신을 점검해 보고 싶었다. 특히 지난날의 잘못을 살펴보고 앞으로는 더 이상 같은 잘못을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문자화 시켜놓은 지난날 그 거울을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삶의 길을 닦고 싶었다. 그러한 동기에서 이 산문집을 준비했다. 그러하기에 숨기고 싶고 부끄러운 것들을 모두 다 수록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195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노동해방문학’, 1990년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시인이 되었다. 시집 ‘맑은 하늘을 보면’ ‘부평 4공단 여공’ ‘몸의 중심’ 등 다수와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장편동화집‘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 동시집 ‘공단 마을 아이들’ 등을 간행했다. 인천작가회의 회장, 리얼리스트100상임위원(대표), 한국작가회의 이사, 제주4·3제70주년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한국민예총 이사장 대행 등을 역임했다.현재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공동추진위원장, 소년희망센터 운영위원, 위기청소년의좋은친구어게인 이사, 서해평화포럼 평화인문분과위원, 인천민예총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아투데이/ "세상은 그를 노동자 시인이라 부른다"/ 2019.09.26 |
링크 : http://www.dongatoday.com/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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