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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내일신문] 김경애, <원폭 피해 한국 여성들>

by 푸른사상 2019. 3. 19.



[인터뷰│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원폭 피해 한국 여성들' 저자] 


"우리 여성사에 언급 안된 피폭 여성들 … 기억해야 할 역사"

82명의 생애사 토대로 책 펴내 … 부모·자식 고통 지켜봐야 했고 결혼생활도 불행해


"이 책을 쓰면서 이걸 쓰려고 그렇게 공부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여성의 삶을 보다 나아지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여성학의 기본입니다. 원폭 피해 한국 여성들은 우리나라 여성사에 단 한줄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 여성들처럼 비참하고 아픈 이야기를 가진 집단은 없습니다.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제 일생에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최근 출간된 '원폭 피해 한국 여성들'(푸른사상)의 저자 김경애 전 동덕여대 교수의 일성이다. 
저자는 이화여대 신문학과와 같은 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서식스대학교 개발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덕여대 교수,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연구원·원장,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사진 이의종

'원폭 피해 한국 여성들'은 원폭 피해 여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근현대 여성사에서 외면당해 왔던 원폭 피해 여성들의 삶을 82명의 생애사를 통해 생생히 드러낸다. 3년에 걸친 노고의 산물이다. 지난 12일 내일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저자를 만나 원폭 피해 한국 여성들의 안타까운 삶과 연구의 의미, 이들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들었다. 

■ 원폭 피해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쉽게 원폭, 핵무기를 얘기한다. 그렇지만 초창기에 개발된 핵무기의 위력이라는 것, 그것이 현실에 사용됐을 때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은 피폭 당시, 사람들의 피부가 흘러내려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또 부모와 형제자매가 원폭 당시, 혹은 그 이후에 고통 받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우리가 유태인 학살을 슬프게 기억하지만 피폭자들의 비극은 자기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원폭 당시, 자식이 불에 타 죽고 교복에 단추만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업고 있던 아이의 목이 날아가고 없는 것을 목격한 이도 있다. 또 당시 갓난쟁이였던 아이가 자라서 '빛이 싫다'고 다락방에만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것을 보는 심정은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하다.

■ 이후의 삶은 어땠나.

피폭 당시, 4만명이 즉사하고 2만3000명이 귀국했다. 어선을 엉성하게 개조한 배를 타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기록조차 없다. 또 이들은 일본이 동화정책을 펼친 탓에 한국어를 몰랐다. 피부가 문드러지고 몸이 아프니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기도 힘들었다.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다. 또 귀환과 치료 과정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친가, 외가 구분 없이 함께 살게 되지만 돌아와서는 결국 아버지 중심으로, 가부장적으로 살았다. 때문에 피해 여성들의 삶은 더욱 힘겨웠다. 

■ 결혼생활도 어려웠을 것 같다. 

결혼생활도 쉽지 않았다. 비극은 한국전쟁이었다. 원폭 피해 이후 5년 만에 전쟁이 났고 남편들이 군에 나가 죽는다. 19살에 결혼해 20살에 돌 된 아이를 데리고 전사 통지서를 받은 비극을 안고 살아오신 분도 계신다. 그 분은 한국어를 배우지 못해 전사 통지서는 받았지만 그 의미를 몰랐다고 하셨다. 

몸이 아프기 때문에 결혼 후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낳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 이혼을 당하고 때론 자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이들 대부분이 1950년대 결혼해 엄혹한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다. 완전히 그 집 하인처럼 너무너무 어렵게 살아간다. 

■ 이들을 지원하는 일본인들이 있다는데. 

이들을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온 일본인들이 있다. 히라오카 다카시는 여러 차례 한국에 와서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또 이치바 준코가 있다. 1968년 원폭 피해자 손귀달이 밀항을 해서 일본에 가서 피해자 치료를 요구한다. 이때 한국의 원폭 피해자를 돕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한국 원폭 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회가 생긴다. 이치바 준코는 20대 때부터 60대인 지금까지 이 모임에서 헌신하고 있다.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수당과 치료비를 받게 된 배경에는 이들의 지원이 있었다. 연구를 할 때도 이들의 기록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 이들의 증언은 현 시점에서 어떤 의미인가.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되새김으로써 지금의 핵무기, 핵발전소가 갖고 있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북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핵무기 보유국이 있다. 최근 미국은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파기를 공식화했다. 초창기 원폭 피해를 들으면 최근의 움직임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정부가 이들을 도울 방법은. 

현재 2300명의 원폭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다. 복지관에서는 2~6명이 한 방을 쓰면서 생활하고 치료를 받는다. 노령연금을 받고 아프면 일본에서 지원을 해 주기 때문에 치료비는 들지 않는다. 지금 복지관에 계신 분들이 99명인데 대기자가 1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복지관을 더 지을 예산이 없다면 기존 요양원의 일부를 이들을 위한 곳으로 지정해 대기자들을 수용하면 어떨까 싶다.

[내일신문], 송현경 기자,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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