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아픔 딛고 출산, 육아, 교육하는 시인의 마음은?
정진남 시인 첫 시집 <성규의 힘> 출간... 맹문재 안양대 교수 시평
"소변 검사 결과 임신이다. / 정확한 진단을 위해 산부인과에 갔다. 초음파 진단을 했다. / "아기가 보이지 않아요, 심장이 뛰는 것이 없는데요." / 절망하고 검사대에서 내려오려는데, 질 속으로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다. / 심장이 박동하고 있었다. / 아기가 애기집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앉은 것이다. / 심장이 세상에 노크했다. 쿵쿵쿵쿵"(시 "첫 만남" 전문).
"처음 나의 성규를 안아 볼 수 있었다. / 숨을 쉬고 있었다. 어른보다 빠르고 또렷한 숨소리 / 놀랍고 신기한 생명체이다. / 어렵고 조심스러운 / 나의 하느님"(시 "출산 3일째" 전문).
정진남(50) 시인의 첫 시집 <성규의 집>(푸른사상 간)에 실린 시다. 오랜 기다림과 유산의 상처 끝에 품에 안은 아이에 대한 숭고한 모성을 기반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의 의미와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까지 인식할 수 있는 시집이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랜 시간 두문불출하거나 자신만의 시세계를 닦아온 시인이 내놓은 첫 시집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성규'인 모양이다. 부모한테 성규는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힘'을 가진 것이다.
"남편이 자동차에 두고 온 지갑을 가지러 나갔다. / 티격태격 화가 나 있던 나는 현관문을 안에서 닫아걸었다. / "엄마는 사람을 좋아하는 법을 배워야 해, 사랑하는 법을." / 성규에게 정곡을 찔렸기 때문에 되려 흐뭇해지려고 했다. 내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말했다. / "엄마, 저 문은 바람이 불면 열릴까." / '성규가 힘들어 하는구나.' /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성규를 외면해 주었다. / "엄마, 바람이 불었나봐." / 남편이 들어왔다. / 비밀번호를 알 수 없는 닫힌 마음을 아이는 열 수 있다."(시 "성규의 힘" 전문).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정진남 시인은 대학 국문과를 나와 신문사 기자를 지냈고, 1997년 생긴 진주여성민우회에서 '여성주의 상담'과 '여성학 책' 관련 일을 했다.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있는 그는 소중한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를 쓰고 있다.
그의 첫 시집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유산'의 아픔과 '출산'의 기쁨뿐만 아니라 신생아실의 다양한 경험까지 시에 담아냈다. 4부에 실린 "무서움"과 "소피(所避)의 세계", "미안해", "아이와 남편과 나" 등의 시도 재미있다.
문학평론가 맹문재 안양대 교수는 시평에서 "모성은 바람직한 가족관계와 사회관계를 이루는 토대가 되는 것"이라며 "임신, 출산, 육아, 교육의 문제를 여성의 몫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남성도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등한 관계로 함께 실천하는 모성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적인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공동체적인 인간 가치를 이룰 수 있는 길이다"며 "정진남 시인의 작품들은 모성의 숭고함을 넘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주목된다"고 했다.
문성해 시인은 "각고의 노력 끝에 태어난 한 아이에게서 비롯되는 이 시집은 실존의 눈길로 가득 차 있고 애틋하고 아름답다"며 "정진남 시인에게 있어 '성규'는 하느님과 동격이면서 그런 신성(神性)의 영역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모성의 아우라(aura)가 변주되는 시적 현실이다"고 했다.
정진남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화분에는 새싹이 돋고 있고 / 물기 머금은 새살은 그늘을 딛고 피어 오른다 // 죽 휘어지며 뻗어 올라간 한 줄기 / 선물 받은 난 화분이 시들더니 / 한 대만 남겼다 /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물을 주었다 / 이사할 때도 함께 가져와 / 물을 주며 살았다 // 난은 이제 세 잎이고 뿌리 쪽에 새순이 보인다 / 앞으로도 난의 생활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 퇴고와 일필휘지를 반복할 뿐."
-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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