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바다 노을 저편 / 함순례
어린 아이가 바닷물에 흥건히 젖은 채 울고 있다
높은 파도에 휩쓸렸는지 두 눈 꼭 감고 다만 공포를 쥐어짜며 울어 젖히는데
운다는 건
울음 밖으로 이끌어 줄 어떤 손길을 기다리는 것
그래, 울 때는 저리 악착같이 울어야 한다
그러나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할 때 많은 건 눈물을 감출 줄 알아야 어른이라고 배운 때문
어느 새벽 아무리 해도 멈추지 않는 코피가 서러워 천지가 외로웠을 때처럼 이미 나를 지나간 사랑에 떨며 쏟아놓은 통곡처럼
이제는 최선을 다해 울고 싶다
그 붉은 귀를 열고 들어가면 기쁨이나 슬픔 같은 것, 땡감처럼 떫어져서 둥글어져서 고슬고슬 맑은 뿌리 내릴 것만 같아서
- 계간『시와시』2010년 여름호(푸른사상)
지금처럼 바다에 관한 시를 언급하는 게 조심스러울 때가 또 있을까. 왜냐하면 시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것은 대체로 자유, 공간의 무한, 태초의 생명과 자연, 원형의 그리움, 고향, 어머니의 품, 혹은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노을 따위일 텐데 진도 앞바다에서 맥없이 꼬꾸라진 ‘세월’호와 함께 실종된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달리 바다를 인용하고 노래할 처지가 아니다. 이 시에서 행마다 빼곡히 박혀있는 눈물과 울음, 슬픔마저 그 성분은 지금의 비통함과는 무관할지니 낭자한 노을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통로는 단단히 묶고 그들 생명의 가물가물한 불꽃만을 생각하면서 울음을 삼키려 한다.
이번 참사는 1914년 1월 ‘해상에서 인명의 안전을 위한 국제 조약’이 채택된 지 꼭 100년 뒤에 일어난 해난사고라 더욱 가슴이 쓰라리다. 이 조약에서 구명보트 구비기준을 배의 총 정원으로 변경하였고, 선박에의 무선장치 의무배치가 강화되어 무선통신기계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이 조약은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이 북대서양 항로에서 빙산과 충돌해 1천513명의 생명을 앗아간 당시 세계 최대의 해난 사고가 계기였다. 당치 않은 평행이론을 들먹이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고와 닮은 점도 많았다.
당시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를 챙기지 않아 육안으로만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했는데, 승무원이 전방 450미터에 20미터 높이의 빙산을 발견했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배를 급히 틀면서 뱃머리는 빙산을 가까스로 피했으나, 배 우현의 수면 아래로 약 90미터에 걸쳐서 긁히고 말았다. 격벽을 넘어서 차례로 흘러 들어간 물로 뱃머리가 서서히 앞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쉽게 철판이 찢어진 것은 질 낮은 강철판과 함께 그 강철을 지지하던 나사못이 한순간에 풀린 게 원인이었다. 지금의 가액으로 환산하면 건조원가로 4억불이 넘는 배가 달랑 1불짜리 볼트 하나로 인해 침몰된 셈이다. 타이타닉의 참사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문명의 진보와 인간의 이성에 낙관적인 신뢰를 갖고 있던 당시의 서방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참혹도 불가항력이 아니라 타이타닉과 마찬가지로 방만함과 안일함, 그리고 물적 인적 품질의 실패가 가져온 비극이라 추정된다. 난해한 상황 가운데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귀환을 염원한다. 어린 생명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가물가물 기억하도록 그곳에 둘 수는 없다. 무심한 바다에 누운 채로 꽃처럼 흘러 노을 저편으로 사라지도록 도무지 내버려두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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