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여우비 간다, 국제신문, 2013.12.27
시인은 문명이란 전쟁터에서 詩로 맞선다
등단 14년 시인 정진경 세 번째 시집 '여우비 간다'…생명·저항의지 담은 시 빼곡
때때로 시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그 존재를 억압하고 할퀴는 외부적 힘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저항 수단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서정성을 잃지 않고 '늘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 시의 미덕이자 시인의 고뇌다. 그래서 시인은 늘 오늘의 사유로 내일을 고민한다. 그런 고뇌의 결과물을 힘겹게 토해내보지만, 바로 그 순간 그것들은 또다시 어제의 시가 되어 버리는 참담함. 그렇게 사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다.
등단 14년째를 맞은 부산의 중견 작가 정진경(사진)은 그같은 숙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시인이다. '부산에 시 참 잘 쓰는 시인 꽤 있다'고 할 때 반드시 그 이름이 불리어지는 정 시인이 최근 펴낸 세 번째 시집 '여우비 간다'(푸른사상 펴냄)는 모던한 감각과 시적 서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생명의 의지를 담고 있는 시의 알갱이들을 빼곡하게 담고 있다.
정 시인의 시에 나타난 생명의 의지는 이성의 몰락과 그에 대한 저항, 존재의 회복을 향한 타협할 수 없는 신념에서 출발한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쌓아 올린 결과물인 문명이 오히려 존재 가치를 파괴하는 기묘한 역전화 현상, 인간 위에 군림하는 통제와 배제의 시스템, 주체에서 객체로 밀려난 이성의 참담한 얼굴을 처절하게 주시한다. 전통적 감성도, 자연의 서정도, 낭만적 향수도 그리지 않으면서 소위 인간적이라고 여겨졌던 과거의 가치와 이념이 폐기처분된 '인공의 현실'을 '객체와의 동화(同化)'라는 시적 문법으로 낱낱이 증언하고 있는 그의 시편들은 일면 곤혹스럽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면 저항 의지의 숭고함을 발견케 한다.
시 '3점 골인 슛'에 그같은 저항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략) 몸이 앓는다는 건/반칙하지 않고 상대방 공격을 저지했다는 증거/홀로 방어선을 지켜낸 고독한 워킹이다"〈'3점 골인슛' 부분〉
시인은 병에 대한 '몸 앓이'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인간 존재를 길들이고 굴종시키려는 '외부의 힘'에 맞서는 정직한 자기 방어의 무기를 드러낸다. 이처럼 그는 압살되는 신체를 억압의 대상이자 저항의 시적 도구로 활용한다. 생각 없는 뇌, 기관 없는 신체, 자유 없는 종속을 강요하는 전방위적인 외부세계의 공격에 맞선 시인의 신념은 자주 등장하는 '태양'이라는 시어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정 시인의 시 '굴욕의 신념'에서는 태양을 향하는 선인장의 가시와 기형적으로 휘어진 몸을 통해 강제된 현실을 거역하는 위대한 신념과 의지를 '아름다운 굴욕'으로 형상화한다.
국제신문 이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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