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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조미희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

by 푸른사상 2023. 8. 18.

 

분류--문학()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

 

조미희 지음|푸른사상 시선 180|128×205×8mm|136쪽|12,000원

ISBN 979-11-308-2081-1 03810 | 2023.8.21

 

 

■ 시집 소개

 

어두운 현실 속에서 찾아낸 희미한 빛

 

조미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가 <푸른사상 시선 180>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가난을 외면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물질과 욕망이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시인은 인간 가치를 지향하는 의지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 시인 소개

 

조미희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2015년 『시인수첩』으로 등단한 뒤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를 출간했다. 2019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 두번째 시집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를 간행한다.

 

 

■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혼자 앉아 있는 사람

드림캐처 / 내 이를 물고 간 새는 / 우리, 가깝고도 먼 / 혼자 앉아 있는 사람 / 사라지는 동네 / 거울이 깨지고 그 틈에서 우리가 자랐다 / 달과 여자와 맨드라미 / 목련여관 / 당신은 앞에 서 있고 나는 뒤에서 자주 운다 / 미역국 먹는 아침 / 시간을 휘젓는 숟가락이 있어 / 해변에 두고 왔다 / 벚나무 밑 의자 / 옥수수가 자란다

 

제2부 눈사람

서울특별시 / 어려운 문제 / 눈사람 / 눈꺼풀에 깃털을 다는 여자 / 밤의 부엉이에게 / 물병 속의 오아시스 / 방충망 너머 / 자본주의 / 담장 속의 아이들 / 더위 / 이터널 / 산책의 영역 / 검은 숲, 발랄한 생쥐 / 비 /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 / 어제의 기분과 오늘의 날씨

 

제3부 행복을 찾아서

불안 / 그늘에 기댄 날들 / 이를 닦으며 생각하는 것들 / 행복을 찾아서 / 꽃사과나무 집 / 사진 찍는 사람들 / 픽션 / 여름이야 / 밥의 온도 / 옛날 약속이 지나간다 / 지붕의 노래 / 에덴의 동쪽 / 병원 복도 / 착한 사람은 어디 갔나 / 위무

 

제4부 수국 지는 오후

청명(淸明) / 수국이 지는 오후 / 배웅받지 못하는 날을 위한 연습 / 모를 것이다 / 와사풍 / 두고 온 방 / 북향집 / 사수자리 / 유전(遺傳), 유전(油田) / 가난한 내가 가난한 시를 쓴다

 

작품 해설 : 가난 한 시가 품은 지금 이곳의 현존 - 이병국

 

 

■ '시인의 말' 중에서

 

너무 빨라서 따라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슬픔은 매일매일 커지는데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이렇게 살아냈어도 모르겠다.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슬픈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슬픔을 대하는 태도를 모르겠다.

 

사라져가는 마음과

사라져가는 사람들과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밥도 되지 않는 시를 쓴다.

 

 

■ 추천의 글

 

조미희 시인은 달이 파먹다 남긴 캄캄한 밤에 자신은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한다. 풍요로운 고층 빌딩의 그림자 속에 숨겨진 그들은 한여름이라도 추울 수밖에 없고 아픈 곳도 보여주기 싫어한다. 어둠의 옷을 더 편하게 여기고, 부러지지 않은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뿌리를 키우지 못한다. 시인은 그들의 가난을 외면하거나 자신의 가난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키워온 것이 가난이라고 당당하게 노래한다. 가난한 꽃과 가난한 낙엽과 가난한 근로계약서와 가난한 밥을 움켜쥐고 기적 같은 시를 쓰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조미희 시인은 “예민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시대의 뒷문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존재를 돌본다(「사라지는 동네」). 이는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문명에서의 오지’의 감각을 내면화한 채 도시 변두리라는 존재의 거소를 살펴본 첫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감각은 “계단 끝까지 오르는 거친 숨결”로 “줄기가 휘어진 모퉁이”에서 “가난”을 경험해본 이의 상실의 체험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정박」,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 그와 같은 도시 빈민의 고단한 삶과 그 누추(陋醜)는 이번 시집으로 이어지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의 곁에서 시인은 “오래 앓다 보면 때론 아픔도 궁금해져 기다리기도” 한다면서 그 아픔의 “더 안쪽 어디쯤에서/집을 짓고 밭을 경작하고 있”는 삶의 양태를 다독인다(「내 이를 물고 간 새는」). 그리고 스스로를 ‘드림캐처’로 자리매김하며 “아무도 너의 꿈이 춤추는 걸 방해하지 않”(「드림캐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곁에 둔다.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어루만지며 존재로 하여금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비록 유년의 아름다운 순간은 상실했지만, 그때를 기억하며 존재의 현존을 위무하고 미래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소박한 옹호를 수행하는 의지. “하얀 눈길 같은 종이 위에”(「가난한 내가 가난한 시를 쓴다」) 쓰인 시는 시인의 마음과 의지로 충만하기에 ‘가난한 시’에 머물지 않는다. (중략)

조미희 시인의 시가 “가난한 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선량”을 찾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선량”은 선하고 어진 성품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옳음을 실천하는 능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가난을 존재의 실체값으로 만들어 삶을 고단하게 하여도 강제된 욕망에 복무하는 ‘우리’가 아닌 다양한, 지금 이곳의 현존을 포용하는 ‘우리’를 실천코자 하는 시인의 시는 결코 가난할 수가 없다. 마빈 하이퍼만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두고 “모순을 포용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동시에 가까워지고,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던 것처럼 조미희 시인의 시 역시 세계가 강제하는 모순 속에서 다양한 ‘우리’의 양태를 포용하고 그 거리를 조절하는 한편,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 지금 이곳의 ‘우리’를 모색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그 길이 비록 달이 파먹다 남긴 밤처럼 캄캄할지라도 조미희 시인을 따라 여기까지 온 우리는 “가장 보편적인 사회” 너머 “선량”한 개인의 평범한 일상이 구축할 ‘우리’의 희미한 빛을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우리, 가깝고도 먼

 

세상에는 다양한 우리들의 규정이 있네

동그란 우리 네모난 우리 찌그러진 우리

오륜 마크처럼 조금씩 발 담근 교집합의 우리

 

우리는 꽃밭처럼 향기롭고

폭탄처럼 무섭네

 

흩어져 있는 잡담과 과도한 뒷담화의

다발이 물웅덩이에서 썩어갈 때

우리는 깊이깊이 계면쩍은 사람

생몰 연도를 모르는 멸종동물처럼

기착지와 기착지로 떠도는 새 떼처럼

가깝고도 먼 우리들

 

꽃밭에 갔다가

우리라는 온갖 도형적 인간들을 만났네

두 손을 모으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우리로의 진입을 넘보곤 했네

 

모든 전쟁은 우리끼리 하네

저쪽의 우리와 이쪽의 우리,

우리라는 말,

진영을 바꾸어가면서 얼마나 친절한 유대감인가

하지만, 가해와 박해 학살자까지도

우리라는 동그라미 속에 존재한다네

 

우리는 아름답고 추해서

우리를 무너트리고 또 건설하는 실수를 저지르네

나와 당신은 늘 가깝고도 먼 우리일 것이네

 

 

달이 파먹다 남긴 밤은 캄캄하다

 

배부른 달이 쉬는 밤

 

야반(夜半)

온갖 도주의 역사가 거기에 있다

가난도 무거워지면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지명을 피해 다닌다

불룩한 달의 배 밑을 은둔지로

조용조용 신발의 밑바닥을 끌고

담벼락으로 스며들거나

서둘러 계단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모세도 어느 으슥한 야밤,

신의 음성이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을 것,

광야의 새까맣게 탄 누룽지 같은 밤은

그를 지도자로 단련시켰을 것이다

 

반군의 녹두장군 전봉준도

다 파먹혀 희미해진 달 아래서

민중의 분노를 논했겠지

기어코 어둠의 칼을 빼 쓱쓱 달에 갈았겠지

빛을 따르라고 하지만

가난은 어둠의 옷이 더 친근하다

 

가난은 집 없는 길고양이의 옷과

빈자들의 손톱 밑 때처럼

무척이나 깜깜하다

 

 

불안

 

달이 환하게 제 꼬리에 불을 붙인다 불안이 오기 좋은 날이다 앙큼한 고양이의 긴 그림자를 밟고 경우의 수 신을 신고 불안이 온다 잠겨 있는 창과 커튼, 커튼은 미동도 없이 점점 커지고 불안, 숨겨놓은 자식 이름 같고 갚아야 할 빚 같은, 불안은 암막 커튼처럼 어둡게 낄낄거리며 세상에서 제일 두꺼운 인간의 피부를 뚫고 소리도 없이 무거운 납 옷을 입고 쓸데없는 질문을 해대는 호모사피엔스 후예의 머리를 뭉개며 바늘구멍 같은 의심의 틈 속으로 홍수로 범람한다

 

베개에 시커멓게 탄 달 부스러기,

입술에서 흘러내린 눈물,

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불안한 것들은 다

이 음절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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