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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오마이뉴스] 박도, <용서>

by 푸른사상 2018. 10. 8.




살아갈 날이 더 적은 나이... 그래도 나는 썼다

[책이 나왔습니다] 장편소설 <용서>를 펴내면서

 

누에가 실을 뽑듯이 쓰다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해방둥이인 나는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작품 첫 문장부터는 옷깃을 여미며 누에가 실을 뽑듯 온 정성을 다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썼다.

 

이 작품을 기필하는데 문득 한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몇 해 전에 만난 그 스님은 이따금 교도소에 법문을 강론하러 간다고 했다. 막 강론을 시작할 때면 교도소 측에서 강당에 일방으로 데려온 죄수들은 당신의 법문을 처음부터 아예 듣지 않고자 돌아앉거나 딴청만 부린다고 한다. 그때 스님이 하신다는 말씀이다.

 

"사실은 나도 죄인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현실의 법망을 요리조리 메기처럼 잘도 헤집고 나왔기에 지금은 교도소 밖에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지은 채 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내 스스로 그 죄를 깨닫고 부처님 앞에 속죄하고자 여러분처럼 머리를 박박 깎았다. 그리고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과 비슷한 빛깔의 먹장삼을 입고 지낸다. 또 여러분과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며, 매끼마다 거친 밥을 먹으면서 살아간다."

 

그 말이 떨어지면 애초부터 돌아앉았던 이들이 슬그머니 정좌하거나, 딴청을 부리던 이들도 하나둘 귀담아 듣기 시작한다는 말씀이다.

 

"사실 나도 죄인이다. 돌이켜보면 내 젊은 날은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바른 삶이 뭔지도 모른 채 무명 무지한 탐욕의 세월을 살아온 느낌이다. 온통 얼룩들이다. 성능 좋은 지우개나 세탁기로 그 얼룩들을 모조리 지우고 싶다."

 

하지만 그 누구나 한 번만 사는 인생으로, 그 얼룩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 이제 나의 남은 인생은 그 얼룩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친구의 영전에 드리는 헌사

 

이 작품은 내가 교단에서 물러나 강원도 산골로 내려온 뒤 첫 번째로 쓴 장편소설이다. 원래 <제비꽃>이란 제목으로 책을 낸 바, 내 역량 부족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오류와 오자도 많았고, 작품의 얼개와 문장도 탄탄치 못했다. 그런데도 재일동포 원로시인 김두권 선생은 장문의 편지로 격려해주셨다.

 

"주인공이 옛 친구를 찾아 미국에까지 간 여정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영혼과 대화 장면은 특이한 설정으로 소설을 흥미롭게, 깊이 있게 하는데 좋은 착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님, 명작은 그리 쉽게 탄생치 않습니다."

 

강 건너 여강마을 홍일선 농사꾼 시인은 여러 차례 간곡한 말로 다시 쓰기를 권했다. 그리고 내가 멘토로 삼고 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한 작품을 수십 번 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말에 나도 용기백배해 오랫동안 이 원고를 곁에 두고 다시 깁고 가다듬어 또다시 세상에 내보낸다.

 

첫 작품에서는 '우정'에 방점을 찍고 썼다면, 이 작품에서는 '용서'에 방점을 두고서 썼다. 지난 내 삶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자판을 두들겼다. 나는 한 문단, 한 문장, 단어 하나 선택에도 최선을 다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독자는 저자가 피와 눈물로써 쓴 글만을 좋아한다."


나는 이 작품을 쓰고 가다듬는 동안,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러 차례 눈물을 쏟았다. 아울러 이 작품을 다시 구상하고, 취재하고, 집필하는 동안 내내 행복했다. 장지수,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고교 시절 가난한 친구를 감싸주었던, 그야말로 목숨이 아깝지 않은 문경지우(刎頸之友)였다. 하지만 나는 이승에서 그에게 빚만 잔뜩 졌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의 영혼 앞에 생전의 빚을 갚는 헌사다.

 

먼 미국 땅에서 그의 영혼을 만나, 피차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심중에 담긴 말을 여러 날 동안 밤이 이슥도록 실컷 쏟아놓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의 번뇌와 갈등, 반목들이 죄다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이를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모양이다. 독자들도 이 작품을 읽고 가슴 속 깊이 쌓인 걸 한 방에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를 체험했으면 좋겠다.

 

조금 쉬었다가 건강에 무리가 없다면 다시 새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작가는 쓰는 시간이 가장 기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구원이요, 삶의 의의다.

 

하지만 책이 어느 정도 팔려야 작가는 계속 글을 쓸 수 있고, 출판사에서도 책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출판계는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한다. 지하철, 버스, 열차를 타도 책을 읽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열이면 예닐곱은 손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의 팬이시여! 늙은 말이 계속 달릴 수 있도록 당근을 주시라. 이번에 펴낸 <용서>는 결코 책값이 아깝지 않게 썼고,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고 자부한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글을 쓰는 이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 구미 금오산을 바라보며 한국 제일의 문사가 되겠다고 정성을 다해 온, 그리하여 워싱턴 D. C. 백악관 앞에서도 미국 지도자에게 한반도의 분단을 풀어달라는 기사도 쓴 문사다(관련기사: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서).


한국의 한 작가가 미 지도자에게 정문일침을 가한다.

 

진정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한다면 남의 주권도 존중해 달라. 당신 나라의 한 주보다 작은 한반도를 '결자해지' 곧 묶은 자가 풀어주듯이, 이제는 지구상의 하나뿐인 한반도의 분단을 풀어주는 게 정녕 대국다운 아량이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아닐까?

 

지나가는 나그네가 무심코 장난 삼아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치명상을 입듯이, 강대국들이 자기네 맘대로 그어 놓은 삼팔선, 휴전선 때문에 우리 겨레는 그동안 얼마나 서로 반목, 시기, 갈등, 저주의 나날을 보냈던가.



-오마이뉴스, 2018.10.07.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72513&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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