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빗방울 화석] 사라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시
춥고, 눈 내리는 날이었다.
2016년 겨울 주말 어느날, 촛불집회에 참여할 사람들이 적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지 않고 광화문 광장으로 일찍 나섰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생각으로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많았다. 경남 거제에 사는 시인도 이날 광화문 광장에 왔나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아무 것도 아닌 듯 한 점이 되기 위해 / 우리는 천 리 길을 건너왔다 / 백만 송이 중의 하나 한 점이 되기 위해 / 검은 하늘을 허위허위 흩날리며 왔다/ 대지에 닿자마자 이내 사라지는 눈송이 몇 점/ 아무 것도 덮지 못했으나 모든 것을 덮는 것을 보았다('겨울혁명' 중)
1987년 부산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원종태는 '(학교엔) 적만 둔 채 주로 시와 사회정치적인 일에 매달렸다.' 1994년 등단한 그는 '여러 신문사 기자로 전전하다가 고향 거제도에서 작은 신문사를 경영했다.' 이번 시집은 2015년 '풀꽃경배'에 이어 두 번째다.
시인 김준태는 지난해 연말 원종태의 '빗방울 화석'을 읽고 "정말이지 내가 어제와 오늘, 원종태의 시를 읽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고 그의 페이스북에 썼다. 김준태가 누구인가.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고발하고 항쟁을 전파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의 시인 아닌가.
원종태의 시는 거제의 풀꽃, 바다, 바람도 담고 있다. 사라지면 안 되는, 사라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이 시인의 본성인 듯…. 혹은 화염병처럼 뜨겁게, 혹은 붉은 단풍처럼 투명하고 차갑게 나타나는 시의 외양은 다채롭다.
평론가들은 도드라진 그의 언어감각이 시 읽는 맛을 더한다고 말한다. 이런 식이다. '때마침 때죽나무꽃 / 흰 꽃 점점 / 뿌려진 산길에 다시 피어'(노자산)….
그만하자. 김준태처럼 단숨에 읽고 행운을 느끼면 될 듯.
- [내일신문] 정연근 기자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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