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훈 시인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출간
‘아프지 말라’ 시화전 10월 4∼17일 인사동 고은갤러리…시각예술가 52명 재능기부
박영근 박노해 백무산 이소리 김해화와 함께 우리나라 노동자 문단의 선두권에 있는 정세훈(63) 시인이 시력 30년을 자축하는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푸른사상)를 펴냈다.
시화집은 그동안 발표한 8권의 시집 중에서 53편을 골라 화가 서예가 판화가 전각가 사진작가 등 시각예술가 52명의 재능기부 시화 작업 끝에 탄생했다. 그림 장르가 제각각이고 왼쪽은 시, 오른쪽은 그림이라 마치 잘 편집된 한 편의 도록을 보는 느낌이다.
195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공장 노동자로 근무하며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정 시인은 첫 시집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을 시작으로 ‘맑은 하늘을 보면’, ‘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 4공단 여공’, ‘몸의 중심’을 펴냈고,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 포엠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향기’까지 펴낸 다산 작가가 됐다.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소년노동자로 일하다 얻은 진폐증으로 10여 년 문단활동을 못했으나 2011년 병마를 극복한 후 다시 왕성한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인천민예총 이사장과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운영위원도 맡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잘난 꽃 되지 말고/ 못난 꽃 되자// 함부로/ 남의 밥줄/ 끊어놓지 않는// 이 세상의/ 가장 못난 꽃 되자”(‘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전문).
정 시인의 시에는 꾸밈이 없다. 노동 현장에서 체험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해고 노동자의 아픔을 “함부로/ 남의 밥줄/ 끊어놓지 않는”이란 표현으로 고발하고, 스스로 “잘난 꽃 되지 말고/ 못난 꽃 되자”고 아우른다.
자신의 아픔을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정세훈 시인은 “더 이상 아프지 말라”며 끊임없이 세상을 위로하고 있다.
‘엄동설한’에선 “달동네 단칸 셋방 독거 할머니// 달랑,/ 한 장 남은/ 금이 간 연탄/ 부서질세라/ 조심조심/ 노끈으로 동여매시네” 하며 우리네 어머니들의 핍진한 생활을 수채화 그리듯 풀어냈다.
‘저 별을 버리지 말아야지’에서는 “내 비록 철야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때워가고 있지만”, “밤하늘 꼭대기/ 저 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희망과 꿈을 이야기한다.
쉰두 살 나던 2006년 가망성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하고 유언 같이 뱉어냈으나 수술 끝에 기적처럼 살아난 시인은 “재생되었다”고 자위한다.
나머지 삶은 덤인 것처럼 그 후 시인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복직투쟁 현장 등 어둡고 힘들고 낮은 곳을 찾아가 연대하고 있다.
이번 시화집도 민예총 실무자의 열악한 삶을 알게 된 후 그를 돕는 후원회 형식으로 10월 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고은갤러리에서 개최한다.
문학평론가인 맹문재 안양대 교수는 작품 해설에서 “정세훈 시인은 노동자로서 겪는 아픔과 눈물과 상처에 함몰되지 않고 별을 품는다”며 “단순히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고자 하는 별의 세계로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이상 세계로 삼는 별은 천상이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지상을 상징한다”고 상찬한다.
정 시인을 “시인이 시로 노래했듯이 저 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밤하늘 저 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시를 이야기처럼 써온 시인”이라고 표현한 소설가 이인휘도 추천사에서 “몸의 중심이 아픈 곳으로 향한다는 시인의 노래처럼 그의 시는 힘들고 고단한 사람들의 희망을 두엄 속의 굼벵이와 봄나물에서도 찾아내며 거센 강물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작은 돌섬처럼 자신의 시가 사람의 삶을 해치는 것으로부터 저항의 푯대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정 시인 본인은 ‘시인의 말’에서 여전히 자신의 아픔을 감싼 채 이웃과 세상의 약자들을 위로한다.
“아프지 말라. 세상이 좀 더 인간답고 아름다워지려면 노동자 민중이 아프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아팠던 그들은 현재도 아프다.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아플 것이다. 그들이 아파하는 한 어쭙잖은 내 시 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세계일보], 조정진기자, 2018.10.03.
링크: http://www.segye.com/newsView/201810020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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