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가정에서 영글어가는 동심 수확했다
정세훈 시인 첫 동시집 ‘공단 마을 아이들’ 출간… 4월5일 북 콘서트
정세훈 시인(왼쪽)과 그의 첫 동시집 ‘공단 마을 아이들’ 표지.
“초저녁/ 서쪽 하늘 집 나선/ 개밥바라기// 밤새워/ 하늘 공장에서/ 일했나 보다// 새벽녘 동쪽 하늘 샛별 되어/ 반짝반짝거린다”(‘샛별’)
“무엇이 좋은지 모두 웃고 있다/ 땀이 뻘뻘 나는 여름인데/ 시커먼 기름때 묻은 겨울 작업복/ 무릎까지 걷어 부치고/ 팔꿈치까지 걷어 부치고/ 껄껄껄 모두 즐겁게 웃고 있다/ 공장마당 구석 쓰레기장 옆/ 검게 그을린 라면 냄비 끼고 둘러앉아/ 소주잔 마주 들고 함빡 웃고 있다// 직업병을 얻어/ 오랜 기간 병과 싸우고 있는 아빠가/ 가장 아끼는 아빠의 사진”(‘아빠의 사진’)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던/ 엄마 냄새가 바뀌었어요// 향긋한 엄마 냄새가/ 공장으로 일 나가시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로 바뀌었어요”(‘엄마 냄새’)
“공장으로 일 나가는 엄마 아빠/ 서너 살배기 우리를/ 단칸 셋방에 홀로 두고 가면// 골목길을 하루 종일 헤매다가/ 고만고만하게 생긴/ 벌집 같은 셋방// 끝내 찾아오지 못할까봐/ 밖에서 / 방문을 잠가놓고 가면// 배고프면 먹고 마시고/ 심심하면 갖고 놀고/ 오줌똥 마려우면 누라고// 단팥빵 한 개 물병 하나/ 장난감 몇 개 요강 하나/ 놓아주고 가면// 어느 날은/ 방바닥에다/ 오줌똥을 싸놓고// 어느 날은/ 울다가 울다가/ 잠들었어요”(‘공단 마을 아이들’)
노동시인으로 시작한 정세훈(64) 시인이 동화, 에세이, 시화에 이어 이번엔 동시에 도전했다. 첫 동시집 ‘공단 마을 아이들’(푸른사상)을 펴낸 것. 삽화는 인천영선초등학교 4학년 학생 26명이 그린 그림이 실려 동시집의 맛을 더해준다.
20여 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며 몸에 밴 경험들이 처음 선보인 동시 행간에 그대로 녹아있다. 정 시인은 ‘아빠의 사진’에서처럼 직업병인 진폐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아픔이 있다.
정 시인의 동시는 아름다운 시어나 정제된 문장보다는 노동 현장에서 있음직한, 아니 실제 일어난 일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온통 회색빛뿐인 공단과 땀냄새·기름 냄새 뒤범벅된 그곳에서 시인은 커가는 아이들의 별과 꿈을 노래하며 동심을 수확했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실존적이어서 그 유쾌함을 초월, 만감에 젖게 한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 고단했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시인은 머리말에서 “아직도 공단 마을에서 극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 정서를 담은 동시집이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아 안타까웠다”면서 “이러한 상황이어서 동시 전문 시인은 아니지만 공단 마을 아이들에 대한 동시집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그러면서 ”벌집 같은 셋방에 살면서 밤낮없이 일하시는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는 모처럼 다 같이 함께 누워 자는 순간이 꿈만 같았다”며 “다수가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지금, 여전히 우리 사회 소수의 삶을 살아가는 공단 마을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추천의 글을 쓴 박일환 시인은 “공단 마을 아이들도 이제 동시나라의 어엿한 일원이 되었으니, 무엇보다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면서 “괄호 속에 갇힌 부호처럼 꽁꽁 숨겨져 있던 봉인을 정세훈 시인이 조심스레 풀어헤친 다음 동시라는 옷을 입혀 주었다”고 상찬했다.
한편, 정 시인의 동시집 ‘공단 마을 아이들’의 출판기념회 겸 북콘서트는 4월 5일 서울 인사동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다.
-[세계일보], 조정진 기자, 2019.03.25.
링크: http://www.segye.com/newsView/20190325570934?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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