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숯가마 (푸른사상 시선31)
1. 도서소개
홍성운 시인은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작 활동을 해왔으며 이번에 출간한 『오래된 숯가마』는 그의 세 번째 시조집이다. 홍성운 시인의 시 쓰기는 시조라는 전통적인 양식을 택했지만 그 안에 함몰되거나 유폐되지 않고, 오히려 형식과 내용을 아울러 우리시의 지평을 늘리며 진정성에 닿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 섬의 풍광과 역사, 소소한 일상, 섬사람들의 오래 삭힌 정한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조근조근 형성화하여 그 울림이 오래 남는다. 서경과 서정, 서사가 그의 시를 떠받는 세 기둥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숯가마』는 홍성운 시인의 세 번째 시조집이다.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왔지만 이번 시집은 꽤나 늦은 편이다. ‘시인의 말’을 빌리면 “나는 이제 기다림에 익숙하다/ 다가가 말을 걸었거나/ 물음을 던졌던/ 그 타자가 응답하는 날/ 나의 시는 온다”고 했다. 세 번째 답변이 나오기까지 10년을 훌쩍 넘겼다. 그래서 그는 기다림에 익숙한가 보다.
가슴에 외등을 단 건/ 섬 사내의/ 고집입니다// 놓친 생각/ 거두지 못해/ 밀고/ 당기는/ 애/ 월/ 포/ 구// 이 봄날/ 그대 오실까// 물빛 환한 밤입니다
―「도대불」전문
‘애월’하면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시가 되는데 거기에 ‘도대불’이라니, 어떤 수식어를 덧붙일까. 시적 화자가 기다리는 대상은 누구일까?
표제작이기도 한 「오래된 숯가마」는 홍성운 시인의 시세계를 일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참나무 한 단쯤은 등짐 지고 넘었을 거다/ 관음사 산길을 따라 몇 리를 가다 보면/ 숲 그늘 아늑한 곳에/ 부려 놓은 숯가마 하나// 못다 한 이야기가 여태 남았는지/ 말문을 열어둔 채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숯쟁이 거무데데한 얼굴/ 얼핏설핏 떠오른다// 큰오색딱따구리 둥지 치는 소리야/ 적막강산 이 산중을 외려 위무하지만/ 무자년 터진 소문에/ 발길 모두 끊겼느니// 시월상달 한라산 단풍은 그때 화기로 타는 거다/ 누군가를 뜨겁게 했던 내 기억은 아득하여도/ 한 시절 사리 머금은/ 그 잉걸불 오늘도 탄다
모두 4수로 된 작품으로 시의 공간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숯가마이다. 세월의 침식 작용으로 인해 그 원형이 많이 훼손됐겠지만 숲 그늘은 그 상흔을 보듬어 준다. 섬 사내의 거무데데한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을 진대, 시월상달 한라산의 단풍은 무자년의 화기가 남아 아직도 잉걸불로 타고 있다. 그 단풍을 보면서 시적 화자는 “누군가를 뜨겁게 했던” 기억으로 그의 얼굴에 홍조가 일고 있음을 우리는 어렵잖게 읽어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바탕에 4․3이라는 서사가 가미되어 탄생했으며, 크게 외치지는 않지만 서경․서정․서사가 세 축을 이루는 홍성운 시인의 시세계에 근접했다고 말할 수 있다.
홍기돈 평론가는 해설에서『오래된 숯가마』를 일독하면 괴테의 『파우스트』의 한 문장
“모든 것의 이론은 잿빛이며, 푸르른 것은 오직 생명의 나무뿐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했듯이 시집의 전체 분위기는 차분하고 고집스레 보이는 섬 사내의 정서가 다분히 묻어난다. 그러기에 잿빛 상흔들도 푸른 식물성의 세계가 감싸주는 구조로 읽히게 되는데, 「올레길 송악」「오래된 숯가마」「제주 조릿대」「숲 터널을 지나며」「몰래물 앞에서 」등에 현현한 역사의 상흔과 기억이 멈춘 곳에 나무나 들풀이 무덕져 있다.
홍성운 시인의 기다림은 막연하지 만은 않다. 활활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기운이 곧 홍조(紅潮)이며 생명력의 표출이다.
작약 한 무더기 꽃 피웠던 자리에/ 쓰다만 시처럼 마른 줄기 놓여 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겨울은 지나간다// 하지만 너테진 흙, 한 삽을 뜨고 보라/ 뿌리는 겨우내 잠을 잔 게 아니다/ 목 빛이 붉어지도록/ 봄의 길목 지켜 섰다// 따져보면 인생사도 뿌리를 키우는 일/혈족의 수직 계보에 한 획을 더 얹으면/ 그것은 가문의 뿌리/ 선대를 잇는 거다
-「겨울 뿌리」전문
지난한 겨울에 “너태진 흙 한 삽을 뜨”고 보면 거기에도 봄을 기다리는 뿌리가 있는 것처럼 질곡의 인생사도 선대를 잇는 뿌리 하나 키우는 일임을 환기시키는데 시인의 생명 의식과 그 맥이 닿아 있다.
홍성운 시인의 또 다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은「흑룡만리」이다. ‘흑룡만리’는 제주도의 돌담을 이르는 말인데 그 길이가 무려 3만여km에 이른다고 한다. 흔히 제주도를 ‘신들의 고향’이라 부르는데. 1만8천여 신들 중 설문대할망은 제주 섬의 창조 여신으로 거명되며 시인은 그러한 제주도의 설화와 역사를 버무려 맵찬 시 한 편을 건져냈다.
누군가 그리워 만 리 돌담을 쌓고/ 참아도 쉬 터지는 이 봄날 아지랑이 같은/ 울 할망 흘린 오름에/ 눈물이 괸 들꽃들// 차마 섬을 두고 하늘 오르지 못한다/ 그 옛날 불씨 지펴 내 몸 빚던 손길들/ 목 맑은 휘파람새가/ 톱아보며 호명하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한뎃잠을 자야 한다/ 그래서 일출봉에 마음은 가 있지만/ 방목된 저녁노을이/ 시린 발을 당긴다// 섬에 가두어진 게 어디 우마뿐이랴/ 중산간의 잣성도, 낙인 된 봉분들도/ 먼 왕조 출륙 금지령으로/ 그렇게 눌러앉았다 -「흑룡만리」전문
제주 섬은 닫힘과 열림의 공간이다. 통시적으로 볼 때 원악유배지(遠惡流配地)였던 시대와 섬사람들의 출륙을 금지했던 시기를 닫힌 시기로 본다면 누구나 왕래가 가능한 요즘의 시기를 열린 시기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닫힌 시기에 섬에 가두어진 것은 우마(牛馬)만이 아니라고 진술한다. “중산간의 잣성도/ 낙인 된 봉분들”도 눌러앉은 이유는 조선 왕조의 ‘출륙금지령’이다. 요즘 오름의 양지바른 곳에는 말 엉덩이의 화인 같은 묘들이 오종종히 모여 있다. 분명 저들은 닫힌 시대 선조의 묘들이지만 오히려 이 시대에 와서 더 자유로워 보인다.
홍성운 시인은 섬에 살아 더 자유를 느끼듯이 시조의 형식을 수용하여 시상이 더 자유롭다. “그렇다 어젯밤 꿈이 오늘 아침 현실이 되듯/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 되는”(이면을 보다)의 의미도 넓게 보면 형식과 내용, 닫힘과 열림이 둘이 아님을 넌지시 보여주는 견자의 안목이 아닐까. “섬에 산다는 건 절반은 기다림이다”(올레길 송악)라 한 것은 비단 홍성운 시인의 섬 살이만은 아닐 듯 싶다. “수평선에 배만 떠도 설레는” 제주 사람들의 열린 의식을 홍성운 시인은 오늘도 묵묵히 전하고 있다.
“『오래된 숯가마』는 제주를 노래하고 있으나 기실 온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판단은 그래서 가능해진다. 제주가 『오래된 숯가마』의 중심이라면 당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 그곳도 세계의 중심인 바, 다양한 중심이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변모해 나갈 때 이 세계는 비로소 전회(轉回)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홍기돈의 해설 「나무의 시간으로 빛나는 포구의 도대불」중에서
2. 저자약력
홍성운
1959년 제주시 애월읍 봉성에서 태어났다.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으며, 시조집으로 『숨은 꽃을 찾아서』 『상수리나무의 꿈』, 시화집으로 『마라도 쇠북소리』가 있다. 2000년 중앙 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역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3. 도서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섬에 산다는 건 절반은 기다림이다
도대불
외딴집
올레길 송악
방자유기 마음
스토커
섬에 사람이 있었다고?
오래된 숯가마
겨울 뿌리
한담 노을길
동행
토우
파옥(破屋)을 넘어서
아그배나무 그늘에서
제2부 눈웃음 같은 이파리들 무성히 돋아날까?
담쟁이
석류
술패랭이꽃
배롱나무
겨우살이
쑥부쟁이
마른 산수국
민들레
고로쇠나무에게
들싸리
묵은 귤
춘란 꽃
자목련 두 그루
제3부 목 빛과 울음이 층진 뭍과 가람 사이
선유도
이슬
정도리 구계등
폭풍의 바다
몰래물 앞에서
소나기
애월, 바람의 덫
고향집 소묘
물양귀비꽃
오래된 연못
화북포구
주남 저수지
한탄강
제4부 석공이 화강암에 정을 대듯 음각을 하듯
노랑턱멧새
흑룡만리
이면(裏面)을 보다
가시리
쇠기러기의 시간
한라산 큰오색딱따구리
둥지를 넘어서
작은 첨성대
할아버지의 명함
종다리 사설
5월, 등나무
멀구슬나무에 대한 명상
숲 터널을 지나며
제5부 그 오랜 바닥의 시간
어떤 문답
반 평의 축
부록(富祿) 마을
꽃댕강 꽃을 보다가
북새통
뿔
구엄리 돌염전에서
동짓달 보리밭
흐트러진 꽃의 구도
베개 할망
제주 조릿대
그것 참, 머쓱하네!
분가
해설 나무의 시간으로 빛나는 제주 포구의 도대불-홍기돈
4. 추천의 글
홍성운 시인을 보면 저절로 그의 시가 보입니다. 아니, 그의 시를 읽으면 시인의 속살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인격을 시의 격조에 담아내고 있지요.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열기로 솟구쳐 파격을 짓기도 합니다. 그의 시조가 더욱 빛나는 이유입니다.
- 김석희(작가·번역가)
“섬에 산다는 건 절반은 기다림”이라는 고백에 싱숭생숭 꽃이 핀다. “가슴에 외등을 단 섬 사내의 고집”처럼 특유의 바람과 설렘으로 난만한 제주-. 홍성운 시인은 그런 곳곳의 꽃과 풀과 나무의 사생활을 캐며 섬의 일생을 필사하는 중이다. 올레, 한담, 부록마을 같은 제주살이의 안팎도 살뜰히 옮겨 적고 있다. 그가 읽는 섬그늘은 깊고 푸르고 정겹고 따뜻하다. ‘무자년’의 숯가마도 그렇게 제주만의 역사를 다시 쓰는 숯가마로 거듭나고 있다. 오래된 등대 ‘도대불’과 돌아서면 솟아나는 ‘몰래물’로 삶의 목을 축이며 가는 시인의 웃음 실린 눈초리에 오늘도 제주가 다습게 실린다.
- 정수자(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