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예정] 한국현대소설학회, <2025 올해의 문제소설>
분류--문학(소설)
2025 올해의 문제소설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153×224×17mm|352쪽
19,000원|ISBN 979-11-308-2221-1 03810 | 2025.2.20
■ 도서 소개
새로운 문학적 감각과 세대적 감수성의 창발적 진화,
그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소설들
2024년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 중 한국현대소설학회에서 선정한 11편의 작품을 수록한 『2025 올해의 문제소설』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다양한 서사 문법과 편폭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작가들의 새로운 문학적 감각과 세대적 감수성을 만나볼 수 있다.
■ 엮은이 소개
한국현대소설학회
현대소설 분야를 전공하면서 ‘한국의 현대소설’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구학회이다. 이 학술단체는 현대소설을 연구하고 자료를 발굴·정리하며 연구 결과의 평가를 통해 이론을 정립, 한국 현대소설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목차
■ 책머리에
김병운|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작품 해설] 속죄의 깊이와 보상_ 신종곤
서고운|여름이 없는 나라
[작품 해설] 피로사회에서 ‘함께’ 살기_ 김지영
서장원|리틀 프라이드
[작품 해설] 누군가의 삶이 스크롤 될 때_ 곽승숙
성해나|스무드
[작품 해설] 약한 연결_ 김남혁
예소연|작은 벌
[작품 해설] 허위적 삶에서 진실한 얽힘으로_ 신제원
이미상|옮겨붙은 소망
[작품 해설] 진화하는 이야기와 희망_ 이정현
이서수|AKA 신숙자
[작품 해설] 그녀를 안다, 사랑한다, 그리고 모른다_ 민선혜
이주혜|괄호 밖은 안녕
[작품 해설] 언어의 심연과 환대의 조건_ 김보경
이준아|청의 자리
[작품 해설] 자리를 구하는 사람들_ 강도희
이희주|최애의 아이
[작품 해설] FAN_ 노태훈
최미래|과자 집을 지나쳐
[작품 해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손을 잡고 걷는다면_ 안세진
■ 출판사 리뷰
한국현대소설학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문제소설』은 1994년 처음 발간된 이래로 해마다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 중 그해에 주목할 만한 문제작을 선정하여 엮어왔다. 이번 『2025 올해의 문제소설』에는 2024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중·단편소설 중에서 11편 작품을 실었다. 현대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여 저만의 문제의식과 밀도 있는 언어로 문학의 지평을 넓혀온 작가들이 모인 것이다. 특히 한국현대소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들이 직접 작품을 검토 및 선정하고 해설을 달아, 독자들의 소설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서사 문법과 편폭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한국문학의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최근 한국문학의 변화를 이끌어왔던 페미니즘 및 퀴어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반영한 소설들도 눈에 띈다. 한국사회의 초상이며 현대인들의 애환을 담은 서사들도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문학적 감각과 세대적 감수성의 창발적 진화, 그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소설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2024년에 발표된 작품들은 최근 한국문학의 변화를 이끌어왔던 페미니즘/퀴어 문학의 흐름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반영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젊은 여성 작가들의 서사적 에너지가 각양각색으로 분출하고 있었고, 한국 사회의 현실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재현하려는 움직임도 다수 포착되었다. SF를 비롯해 장르 계열의 소재나 문법을 활용한 작품들이 다소 줄어든 것도 특기할 만한 지점이었다. 환상이나 기괴의 공간을 창출하고 그 안에서 현실의 아귀다툼이나 모순을 서사화하는 작업에 작가들이 어지간히 지쳐버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분명 아닐 터인데, 아무튼 문예지 소재 장르 문학의 위축은 다시 되짚어볼 만한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 소설은 현재 서사 시장에서의 시세와는 달리 다양한 서사 문법과 편폭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을 우리가 ‘역진화’로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 소설의 역진화는 내년에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번에 선정된 작가들 대부분은 활동 경력이 길지 않은, 신인 축에 속하는 작가들이다. 한국문학의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어 보이고, 역진화의 표징으로 봐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우리 소설의 본질적인 양태 변화가 역진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는 논리는 말 그대로 ‘거친’ 선언에 불과할 것이겠지만, 여하튼 서사 시장의 우위 여부와는 별개의 함의를 갖고 있는 최근의 변화상(문예지 소재 작품들의 역진화)은 앞으로도 계속 주목을 요할 일이다.
지난해 우리 소설은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이라는 상징적인 이정표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문학적 감각과 세대적 감수성의 창발을 알리는, 이른바 창발적 진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25년에도 여전히 문예지 편폭이 더욱 창신되고, 우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책 속으로
나는 나를 단숨에 밀어내는 듯한 진동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물속을 걷는 것 같은 무게감과 저항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내 발이 점점 더 다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대로 돌아서면 오래도록 후회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돌아섰고, 여기서 달아나면 영영 죄스러우리라는 걸 알면서도 달아났다. 그렇게 나는, 도망쳤다.
(김병운,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23쪽)
미주의 어설픈 위로에 덕희는 톡 쏴붙였다. 대화는 대충 그렇게 끝이 났다. 둘은 조각난 딸기 더미에 설탕을 붓고 나서 한동안 마주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삶을 지탱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두 개의 삶을 지탱하는 편이 낫다. 비슷하게 고생하고 비슷하게 안쓰럽고 비슷하게 불행하면서도 종종 같이 즐거울 수 있는 미주와의 삶이 딱 좋았다.
(서고운, 「여름이 없는 나라」, 51쪽)
“이거…… 정말 힘들지 않나요? 여러 가지로요.”
오스틴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지연장술에 대해 한참 설명한 다음, 이제 거의 마음을 굳혔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요. 좋은 여자도 만나고요, 페미가 아닌 좋은 여자.”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81쪽)
내 말에 미스터 김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열사’가 무슨 뜻인지 묻자 그는 생각에 잠기더니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풀이해주었다.
아주 좋은 사람들. 그의 말을 나도 미온하게나마 수긍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고 수고를 마다 않고 마음까지 내어주는 온정으로 넘치는 이들이었다.
(성해나, 「스무드」, 120쪽)
게다가 이중일은 이 일이 싫었다. 타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채 오래도록 이 일을 해왔고 환자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은 정말이지, 죽도록 싫었다. 그래, 죽도록. 이중일이 건사해왔던 그 이상한 평화는,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서야 가능했다.
(예소연, 「작은 벌」, 149쪽)
n&n’s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 전혀 아니어서 아파트를 팔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에도 앞으로 집값이 계속 오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보, 나 살면서 한 번은 돈을 이겨보고 싶어. 아파트를 팔아버리자. 손해 볼까 전전긍긍하지 말고 선제적으로 손해를 봐버리고 손해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이미상, 「옮겨붙은 소망」, 174쪽)
미리야…… 나는 중요한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이 나이에도 자꾸만 든다. 왜 그럴까. 이 우주에 신숙자로 태어나 헬레나로 살어리랏다,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엄마, 양말 포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야.
맞아, 그것도 중요하지, 하고 숙자 씨가 순순히 답했다.
(이서수, 「AKA 신숙자」, 217쪽)
오직 손짓과 몸짓, 표정만을 동원할 뿐인데 이상하게도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저절로 이해되었다. 여자는 마임 배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동작이 섬세하고 표현력이 뛰어났다. 몸에서 출발한 언어는 의식적인 해석의 노력이 필요 없게 단단한 괄호에 담겨 곧바로 내 몸에 도착했다.
(이주혜, 「괄호 밖은 안녕」, 237쪽)
윤은 단을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여전히 걷지 않는 다리 위에는 청을 만들기 위한 과일 꾸러미가 한가득 얹혀 있었다. 단은 당장이라도 그 과일들을 물가에 내동댕이치고 윤을 휠체어에서 끌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준아, 「청의 자리」, 262쪽)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 기회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진짜 비참하지? 그런데 이렇게 비참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를 가졌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리의 아이를.
(이희주, 「최애의 아이」, 302쪽)
힘없이 걷는 두 사람 앞에 과자 집이 보였다. 달콤하고 알록달록한 과자 집이 하나, 둘, 셋, 넷 끝없이. 우리는 앞으로 과자 집을 몇 개나 더 지나쳐야 할까. 모든 과자 집을 무사히 지나칠 수 있을까. 구운 과자 냄새는 어찌나 향긋하고 부드러운지.
(최미래, 「과자 집을 지나쳐」, 3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