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순 산문집,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
분류--문학(소설)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
오인순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57|145×210×14mm|216쪽
18,500원|ISBN 979-11-308-2195-5 03810 | 2024.11.25
■ 도서 소개
힘든 삶을 짙은 정성과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아름다운 수필들
오인순 작가의 수필집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가 푸른사상 산문선 57로 출간되었다. 가족을 향한 애정, 힘들었어도 아름다웠던 삶의 시간들, 자연의 생명력 등을 섬세하고도 유려한 문체로 그렸다. 따스한 모성과 짙은 정성이 배어 있는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삶의 가치를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준다.
■ 작가 소개
오인순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대학교 가정교육과를 졸업하고 40여 년간 교사 생활을 했다. 음식과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원광디지털대학교 한방건강학과, 제주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해왔다. 2017년 『문학청춘』 신인상, 2020년 『에세이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함께 쓴 책으로 『흔들리는 섬』이 있고, 『서귀포신문』에 ‘문필봉’과 『제주해럴드』에 ‘화요에세이’ 및 ‘오여사의 수랏간, 그 유혹’을 연재하고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1부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
또 잊으셨나요 / 문어의 환생 / 호박꽃 /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 / 또 먹고 싶다, 그 청묵 / 어머니의 금방석 / 우산 속의 로망스 / 고등어 두 마리 / 장끼 울음소리
2부 나비의 꿈
몸국 / 콩죽, 죽을 쑤다 / 나비의 꿈 / 동백꽃 피는 봄날 / 나무도 열매를 맺을 때 아프다 / 는쟁이범벅 / 솔잎 그리움 되어 / 효돈천에 어린 그림자 / 멍석딸기 / 새벽에 서다
3부 비 오는 날 그 꽃
이 가을 토란에 젖는다 / 당신을 따르리 / 수타면 한 그릇 / 고독 속에 꽃은 피고 / 마지막 한마디 / 비 오는 날 그 꽃 / 담쟁이 / 엔딩 파티 / 11월에는
4부 그녀 효영이
갈까마귀처럼 / 준휘가 차린 밥상 / 봄, 그렇게 / 구름 키스 / 그땐 왜 알지 못했을까 / 뜰에서 배운다 / 그녀 효영이 / 보목리 솟대 / 초록이 온다
5부 춤추는 여름 식탁
신을 위한 잔치 / 배추가 수영하고 있어요 / 떨켜를 읽는 아침 / 춤추는 여름 식탁 / 나의 소울푸드, 양하 / 우리 춤을 추어요, 베사메무초 / 쓰리 킴의 질풍노도 / 탱자나무 / 해 질 무렵에
■ ‘작가의 말’ 중에서
꿈에서 깨니 ‘꿈틀거리다’라는 단어가 혈관을 타고 흐릅니다. 아름답고 힘들었던 순간을 품고 살아온 지난 일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옵니다. 주방에서도 텃밭에서도 추억의 그림자를 밟고 꿈틀거립니다. 쓸쓸하다고,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고.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음식 공부로 동분서주하다 수필이란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 지난 이야기를 하며 사랑을 나눈 지 7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랑이 늘 달콤했으면 좋으련만. 때론 얄궂을 때도 있었고 귀찮다고 등을 돌려 다른 길을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제 길을 찾았습니다.
삼 년 동안 새벽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기억의 조각 속에 그리움과 상처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릇에 그것을 담고 사유와 성찰이란 양념으로 감칠맛이 나도록 끓이기도 하고 무쳐봤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위로가 되고 향기가 났습니다.
늦은 인연이지만 후회 없이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스며들며 사랑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제 부끄럽지만 그간 나누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펼치고자 합니다. 따스한 마음으로 음미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 추천의 글
바다와 땅이 함께 넘겨주는 척박한 생태환경에서 가족에게 덮쳐오는 생존 과제를 해결해나가며 살아온 사연이 여기 가득 담겨 있다. 장편소설로 엮는다 해도 다 삐져나올 서사, 시로 함축하기에는 지나치게 혼융된 서정 등이 편편으로 나뉘면서 작은 소재와 그것에 어울리는 단아한 이미지로 엮어 수필이라는 이름에 맞춤하게 놓고 있다. 수필로 입성한 때가 좀 늦은 게 아닌가 하다가도, 그동안 다른 양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참았다가 이제 이렇게 내놓은 게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오인순의 글을 읽으면 수필이야말로 오인순 같은 사람이 써야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 박덕규(소설가·문학평론가)
작가의 글은 동글동글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촉감, 좋은 양분의 알찬 내면, 그 자체만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섬세하고 따스한 모성과 생명에 대한 배려와 짙은 연민과 정성이 그 바탕에 자리해 있다. 요리 전문가인 작가는 힘든 요리 과정의 깨달음을 통해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삶을 갈등하며 아파한다. 그 순간을 품고 살아온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중한 삶의 덕목들을 이끌어내어 서정적인 수필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복효근(시인)
■ 출판사 리뷰
제주에서 나고 자란 오인순 작가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곁에서 살아온 삶의 체험들을 이 산문집에 술회하고 있다. 가족을 향한 애정과 모성, 자연으로부터의 생명력, 어린 시절 아름답고 힘들었던 추억이 맛깔스럽게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그리움과 회한을 품고 살아온 삶의 한복판에서 찾아낸 소중한 삶의 덕목들이 바다에 비치는 윤슬처럼 맑고 눈부시게 다가온다.
그리운 이들과 지난날의 상처, 마음의 담아둔 울음과 쓸쓸한 기억의 조각이 여기 가득 풀어놓는다. 11월의 보름달이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로 허망하게 떠나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매일 고달픈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오신 어머니, 그리고 자식으로서 그런 고된 삶을 읽어드리지 못한 회한이 그득하다. 한편 실과 바늘처럼 꿰어져 온 남편과의 인연도 그리고 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저자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에 부임해온 남편과 처음 만나고 사랑이 싹텄던 그 날의 기억을 다시 마주한다.
저자는 기억의 조각 속 그리움과 상처를 “그릇에 담고 사유와 성찰이란 양념으로 감칠맛이 나도록 끓이기도 하고 무쳐봤다”고 말한다. 서리달빛 아래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넉넉하고 따스한 집밥처럼 다가와 고단한 우리 삶을 섬세하게 위무해준다.
■ 산문집 속으로
나는 매일 다른 변화를 주는 달빛을 좋아한다. 서쪽 하늘에 잠깐 나타났다가 숨어버리는 둥근 눈썹 모양의 초승달, 때가 되면 늑대를 울게 하는 보름달도 좋아한다.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온밤을 누리니 더욱 좋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비어 있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모나거나 야박하지도 않고 어우렁더우렁 편안하다. 나는 그래서 나를 닮은 보름달을 좋아한다.
이제 며칠 있으면 어머니 기일이다. 기쁨보다는 아픔이 더 많았던 어머니, 잔물결 되어 흐른다. 다음 생에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 보듬어드리고 싶다. 이생에서 못다 한 따스한 이야기가 서리달빛 아래 탁음처럼 들려온다.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 25~26쪽)
동백꽃 낙화에서 죽음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애처롭고 눈물겹다. 초록 잎 사이사이에서 소리 없이 희생된 자들의 못다 한 말과 하지 못한 그 속울음이 들리는 듯하다. 언제면 뼛속까지 스민 상처와 아픔과 그리움을 밀어낼 수 있을까. 동백의 섬 제주가 눈발에 흘린 붉은 피와 눈물, 그 상흔을 짚으며 동백이 걸어온 길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동백꽃 피는 봄날」, 64~65쪽)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흐르는 구름 소리를 듣습니다. 저 높이 하늘에 살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수도자처럼 침묵하며 흘러만 갑니다. 마치 지상이 제 집 아닌 듯 겉욕심을 텅 비우고 가벼이 흘러 흘러갑니다. 구름에게 가야 할 길을 물었더니 살짝 귓속말을 합니다. “그냥 너의 길을 가라.” 지나친 욕심과 허영심, 미움과 질투 버리고 바다와 같이 고요한 마음으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삶을 살다 보면 해가 가려진 구름처럼 어두운 시절도 있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빛의 희망이 온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합니다.
(「구름 키스」, 1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