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착한 자영업 / 정원도(대구일보, 2013.05.09)
착한 자영업 어머니 낡은 스웨터의 터진 손목처럼 빚이 되는 것이 두려워 그 빚 갚아 나가는 데만 신경쓰다보면 금방 바닥난다 딱 그런 자영업이다 재빨리 갚아나가는
제때 결제 안 해주면
자영업자의 일 년은 겨울 곶감처럼
나무들이나 풀들의 살림도
땀 흘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워
맺은 열매 다시 땅으로
바람에 다 날려 보내는 것이
미리 꾸어다 쓴 햇볕이나 바람에게
땅에게, 구름에게
착한 자영업자의 마음이다
- 시집『귀뚜라미 생포 작전』(푸른사상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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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포가 큰 사람은 빚도 척척 잘 내고 사업도 키우고 재산도 불리지만 주변머리가 그다지 없는 대개의 서민은 빚이라면 덜컥 겁부터
난다. 갚아야 할 부담 때문에 빚은 가급적 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세한 자영업자는 빚 안 내고 사는 게 장땡이다.
고만고만한 장사에 빠듯한 살림, 집세 내고 각종 세금 공과금 빼고 카드수수료 빠져나가면 겨우 가족들 건사할 정도다. 그렇게만
되어도 큰 다행이라 여긴다. 보태거나 뺄 것 없이 현상유지만 해도 좋겠는데 그조차 여의치 않아 손해를 보고 하던 업을 접는 경우가
더 많다. 자영업을 하다가 말아먹는 사람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런 실패가 나뿐 아니라 주위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는 연대의식
정도이다. 그들에겐 실업급여를 받거나 국민행복기금으로 은행 빚을 탕감 받는 사람들이 부럽기조차 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은 다 같은데 노동자의 절규는 사회의 관심을 받으나, 영세자영업자들의 비애는 나 몰라라 하는 게 현실이다. 대책이라야 돈 빌릴
때 이자를 조금 낮춰주거나 특례보증을 해주는 수준인데 그마저 대개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다. 수백만 영세자영업자가 울고 있어도
대책은 별무다.
취약계층의 채무를 조정해 자활의 기반을 마련해주자는 좋은 취지의 국민행복기금이 마땅히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는지, 혹여 그들에게 그림의 떡은 아닌지 꼼꼼히 챙길 일이다. 대다수 서민들의 간절한 소원은 등 따시고 배 곪지 않은
일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 또한 그것이다. ‘자영업자의 일 년은 겨울 곶감처럼 금방 바닥난다.’
한때는 중산층이었다가 불황 1년 만에 홀랑 말아먹고 빈민층으로 전락한 자영업자가 하나 둘 아니다. 시인은 대뜸 자영업자의 살림이
나무와 풀들과 같다고 한다.
‘땀 흘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워 맺은 열매 다시 땅으로 바람에 다 날려 보내는’ 것처럼
스스로 알아서 제팔 제 흔들며 제 살림을 살아간다. ‘미리 꾸어다 쓴 햇볕이나 바람에게 땅에게’ 재빨리 갚아나가는 나무처럼
대부분의 착한 자영업자들도 빚이나 외상을 재깍재깍 갚아왔다. 그들에겐 꼬박꼬박 월급을 타 먹는 봉급생활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누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도 어쩌지 못하는 자영업자의 처지다. 저
나무와 풀이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