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근로자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한걸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지하 수천 미터 막장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채탄작업과 1500도의 쇳물을 생산하는 철강공장에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은 생산노동자의 삶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있다.
1. 시집 내용(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족보
겨울 편지
생선장수
아버지
여름밤
이발소
타작
족보
야근
퇴근길
온천장에서
이등병 아들에게
휴전선 편지
프레스공
보일러
독학 인생
구조조정
뿌리
저녁밥
제2부 조립공
어떤 경고문
천 원 한 장
가을밤
새벽길
남방의 연인
주현이
때밀이 남자
구절초
앞집 여자
번데기
철길 이편
장마
태풍
거미
들판
스티로폼
못 공장 순님이
조립공
은행 털기
제3부 연금술사
산업전사
용해공
천장크레인 운전공
박만득
주인선
작업복
담금질
확률
오십대
3교대
공단대로
노란 인생
자본가들은
노래방
직업
싸리꽃
적선
무학산
제4부 나는 광부였다
막장친구
나는 광부였다
아내는 청소부
회식
장미
결국은
가을
목발 짚는 남자
환갑
복지카드
진폐 정밀검진을 받으며 1
진폐 정밀검진을 받으며 2
진폐 정밀검진을 받으며 3
등산
해설 가장 무거운 전쟁-이민호
2. 시인 소개
1950년 강릉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20대 초반에 가정을 거느리고 소작농, 탄광 광부 4년을 거쳐 철강공장에서 30년 넘게 일했다. 특근과 잔업에 지친 몸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근로자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했고, 199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수필이 당선되었으며, 노동자 시 동인 ‘객토’에서 시작 활동을 했다. 현재 경남작가회의 지회장을 맡고 있다.
3. 시세계
이한걸은 틀림없이 노동자다. 또한 시인이다.
그의 시를 노동투쟁의 무기로 만들어 노동시의 패총 한 켠에 밀어 넣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영국 시인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시인은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이지, 눈을 가지고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이는 대로 전사(轉寫)한 것이 시가 될 수 없으며, 시인의 인식을 거쳐 변용(變容)된 것만이 비로소 시라는 말이다. 그처럼 시를 화석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없기에 우리는 찬찬히 그의 눈을 응시해야 한다. 그가 보아낸 무엇인가를 통해 시인의 참모습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한걸의 눈을 통해 드러난 세상은 전쟁터다. 목숨을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앗차 하는 순간 협착되고 추락하는 생산 작업’(「야근」) 공장과 ‘하늘과 적군밖에 없는 철책선’(「휴전선 편지」)이 중첩되는 순간 삶의 현장은 ‘먹고 먹히는 숨 막히는 정글’(「때밀이 남자」)로, ‘생지옥’(「태풍」)으로 ‘붕괴된 막장’(「결국은」)으로 바뀌어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가 경험한 체험은 노동의 인간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의 시에서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라는 청년 마르크스의 명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는 노동하는 계급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전복되는 혁명으로 종결되는 역사’라는 노동의 진보적 가치와 위대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은 곧 전쟁 행위이며 삶의 현장은 전장과 같기에 그의 시에서 전쟁 트라우마와 같은 신경증적 증상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전쟁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그것을 치유하지 않는다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이며 폭력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결국에는 개인의 정체성을 파편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를 절멸시킬 요소로 자리 잡는다. 더욱 큰 문제는 전쟁 상처가 개별 인간 존재에만 파괴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여타의 인간관계는 물론 다양한 대상들과의 의사소통 경로마저 차단해버림으로써 사회적 존재 기반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절대적 부정의 태도를 강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처럼 그의 시에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기억은 신체적 징후로 드러난다. 환지통(幻肢痛)과 같은 환각 증상과 발작과 같은 신체적 마비, 악몽이나 가위눌림이 대표적이다. 아버지의 절반쯤 잘려나간 발가락 때문에 온 가족이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거나(「아버지」), 손이 잘려 몸부림치는 동료의 고통을 악몽 속에서 자기화한다거나(「프레스공」), 천식처럼 멈추지 않는 발작 증세로 소모품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정신적 불안과 중압감을 재현한다(「저녁밥」).
시인의 천성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시는 무기화될 수 없는 형식과 내용을 가졌다. 언제나 시선은 자신의 깊숙한 폐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노동은 가장 무겁다. 동시에 그의 시는 이 억압과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아프게 보여 주고 있기에 ‘상실의 자기화’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시에서 밖으로 내달릴 것이 아니라 고요히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면 한 가닥 치유의 길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4. 추천의 글
이한걸 시인이 쓴 시는 곧 삶이며 가난한 노동자들의 ‘족보’입니다. “아내도 공장 나가고/딸도 공장 나가고/아들도 공장 나가고//어쩌다 다 같이 쉬는 일요일/길고 긴 옥상 빨랫줄엔/빛깔 다른 작업복/너울너울 춤을” 추는 건강하고 든든한 족보입니다. 시인은 이런 족보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 시집 곳곳에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누나, 못 공장 순님이와 쌍안경 조립하는 민숙이, 차종열, 박만득, 정길수, 김주석…… 부지런하게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과 안타까움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버림받고, 병들고, 죽어갔는지 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을 잘 살려 쓴 이 시집은 아이고 어른이고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을 읽으며 하찮은 욕심 따위를 버리고, 서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서정홍(농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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